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1. 작가만 보고 책을 골랐다! 나로서는 정말 드문 일이었다. 아니, 작가 이름만 보고 책을 고르는건 자주 있는 일이고 꽤 좋아하는 방법이지만(나는 한 작가를 처음 접할 때 보통 그 작가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서 한 꺼번에 읽는 경우가 많으니까 대개 신간 위주로 읽게 되지만) 그 작가의 첫 책을 이름만 보고 고르는 일은 결코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하다못해 그 책이 어떤 책인가는 알아보고 사는데, 이 책은 김애란, 이라는 작가 이름 하나만 믿고 집었다. 워낙에 자주 들어온 이름이었거든. 


생각해보면 그건 꽤 대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떤 작가를, 그 작가의 책을 단 한권도 읽어보지 못하고, 떠들어보지도 않고 집는 것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게 아닐까. 그리고 동시에 그렇게 아무렇게나 집은 책이 이렇게 실망감을 주지 않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말하기에는 이 책이 너무 유명한 책인 것 같지만. 그러니까, '나만 몰랐던 이야기' 정도 되려나?


2. 사실은 이런 책일 줄 모르고 집어든 책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인간적인 이야기라서 조금은 놀랐다. 사실 김애란, 이라는 이름 세 글자만 보고 집었다고는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 그 사람 자체를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다보니 김애란 작가님에 대한 이미지는 딱 하나였다. 여류작가. 한국문학의 젊은(?) 여류작가에 대한 내 이미지는 두 사람이 만들었다. 그 사람들의 실제 우리 나라 문단에서의 위치와 무관하게, 내가 의식하고 읽어본 책이 그 정도였기 때문일터다. 황정은과 김사과였다. 그리고 사실 한 80% 정도는 황정은 작가님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는 한 문학 선생님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는데(심지어 직접 배우지도 않았는데!) 그 선생님이 권해주셨던 책이 <百의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 작가에 빠져서 허겁지겁 읽어냈...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그 뒤로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따라가며 읽었다. 


김사과 작가님(으, 작가님이란 호칭을 붙이는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냥 부르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ㅠㅠ) 책은 영이, 그 중에서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으; 몇 번 봤는데도 외우질 못하는 이 제목..) 하나만 읽어봤다. 동아리에 국문과 형이 추천했던 소설. 황정은과는 딴판인 것 같으면서도 묘한 부분에서 이미지가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겠거니, 했다. 김사과의 소설 한 편과 황정은의 책 두 권으로 내 머릿속에는 조금 신비롭고, 조금 몽환적이고, 조금 혼란스러운 이미지로 굳어진 거다, 한국 30대 여류문학은.


그러다 접하게 된 이 책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너무 인간적이었던거다. 그리고 나는 아마 이런 내용을 기대하지 않았던거다. 실망한 것은 아니다. 실망하기에는 왠지 주인공인 아름이에게 미안해지는, 그런 소설이었다. 너무 좋았던 소설. 기대하고 파낸 원석이, 내가 생각했던 보석은 아닌데, 그만큼이나 값진 또다른 보석의 원석이었다는걸 알게 된 듯한 기분.


3. 솔직히 서하가 30대 남자일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중간에 이야기가 그렇게 되버릴 줄은 몰랐다.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 중에 이런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물론 그건 이렇게 상처를 주고 받는 그런 내용은 아니었고, 메일이 아니라 채팅이었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묘하게 그 책이 생각나는 내용이었다. 과연 마지막에 아름이를 찾아왔다던 그 남자는 서하를 연기했던 그 사람이었을까. 찾아왔다면 무슨 기분으로, 왜 찾아왔던걸까.


툭 까놓고 말해보자. 이 책에서 우리가 '느껴야만' 하는 것은 생명의 소중함, 삶의 소중함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실제로 느끼게' 되는 것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리라. 책을 다 덮고나서 책의 내용을 곱씹다보면 "아 그래, 우리 삶은 이렇게 소중한거야!"하는, 상투적이고 오글거리고 어떻게보면 진부하게 까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결코 이 교훈이 가볍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상투적이고 진부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책을 읽고 뭘 느꼈냐는 질문에 답할 때일뿐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 책은 사실 그런 무게를 느낄 수 없게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런 내용을 어렴풋이 살갗으로 느끼고는 있는데, 작가는 슬퍼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부분 부분 슬퍼할 여지가 생기는가하면 아름이나 장씨 아저씨를 비롯해(그리고 사실은 부모님인 대수와 미라 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위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정신없이 끝으로 달려나갈 때까지 슬픔이라고 부를만한 감정까지는 치닿지 않는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진부한 이야기고 자시고. 삶은 소중하다. 그리고 또 하나. 장씨 할아버지가 처음엔 참 실없는 캐릭터로 일관하다가 막바지에 와서 굉장히 진지한 캐릭터가 되는데, 그쯤이었는지 다른 부분이었는지 정확하진 않는데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버지가 되고, 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식이게 된다는. 그리고 큰 장씨 할아버지와 작은 장씨 할아버지는 그런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에, 장씨 할아버지에게 아름이가 왜 큰 장씨 할아버지 앞에서 그렇게 철없이 구냐는 질문을 하는데, 거기에 작은 장씨 할아버지가 이렇게 답한다. 아버지가 그걸 좋아하시니까, 라고. 결국 그런거 아닐까. 다 큰, 어른이 된, 철 든 자식의 모습과 철없는 자식의 모습 모두를 원하는 거.. 그게 부모된 마음이 아닐까.


왜, 책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늙음이라는건 일단 늙어봐야 아는 거라고. 사실 부모라는 것도 일단 부모가 되어봐야 알 수 있는 걸거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하는 저런 소리는 가소로운 소리다. 내가 부모가 되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그런 감정만으로도, 묘한 아릿함을 느낀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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