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소매상

  우선, 하나만 확실히 하고 가자. 이 글은 유시민 씨에 대한 어떠한 평가를 내리기 위한 글이 아니며, 또한 유시민 씨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원래는 제목이 '지식소매상 유시민'이었는데, 그래서야 낚시성 제목이지 싶어서, 첫줄을 쓰고 나서 바로 제목도 고쳐버렸다. 지식소매상. 내가 유시민 씨에 대해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 꽤 될 터다. 거기서 나는 곧잘 이런 말을 했다.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유시민은 좋아한다."라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느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 인간으로서의 유시민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유시민 씨의 저서 몇 권을 인상깊게 읽었을 뿐이다.


  그가 책을 쓰면서 (내가 그 단어를 처음 접한게 '청춘의 독서'였던 것 같은데) 자신을 표현한 용어가 바로 이것, 지식소매상이었다. 자신은 지식소매상이 되고 싶다면서. '청춘의 독서' 때 작가의 말을 읽었던가?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원래 작년 까지만 해도 책을 볼 때 작가의 말 부분은 대부분 스킵했었다. 다만, 그 단어가 왠지 마음에 들었던 기억만큼은 확실하다. 지식소매상. 왠지 마음에 드는 단어라면서. 그러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서론에서 그가 지식소매상을 이렇게 정의했다.


1988년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출간한 이후 지금까지 내 생업은 지식소매상이었다.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찾아 요약하고, 발췌하고, 해석하고, 가공해서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지식소매상이 하는 일이다.


  거기서 아차, 싶었던 부분이 있다. 그건 내가 한동안 좋아했던 글쓰기 방식이고,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지양해온 글쓰기 방식이기도 했다. 이런 글쓰기에서 시작된 글들은 대개 당시 내 주요 관심사였던 일본 서브컬쳐(흔히 말하는 재패니메이션.. 이게 '흔히'라고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와 PMP 등에 집중되어있었다. 이런 글쓰기를 그만두게 된 것은, 어느 순간부터 별다를 것 없는 글들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지식소매상..이라는 범주에 넣을 정도의 지식을 전했던 것은 아니니 정보소매상이라고 해둘까. 정보소매상이 쓸 수 있는 글은 크게 두 가지다. 뉴스를 전하는 글과 일반적 지식을 전하는 글. 그땐 신나서 그런 글을 썼었다. 그걸 바탕으로 지금 이 블로그의 누적 포스트 수는 2000을 넘겼고(물론 대부분 지워버려서 남아있는 글은 500개 남짓이지만).


  그런데 둘 모두 내게는 무리였다. 뉴스를 전하기에는 '언론매체'적인 파급력이 너무 약했다. 한마디로 뉴스는 뉴스인데 봐주는 사람이 없었던 뉴스였다. 그런 뉴스는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분야에서 나보다 더 깊은 지식을 가지고 더 빠른 정보원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뉴스를 양산해냈다. 내가 끼어들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지식 부분도 그랬다. 나의 지식은 당시 어디까지나 중고생 정도였다. 그것도 매우 일반적인 중고생. IT든 재패니메이션이든 내 지식은 매우 얕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슷한 글이 계속 찍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떤게 궁금해서 검색창에 쳤을 때 서로 다른 신문사에서 별반 다를 것 없는 내용의 기사가 수백개 뜨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굳이 이런 글이 더 필요하겠나 싶어서 정보를 전하는 글을 지양하기 시작했다. 블로그에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내 생각을 담은 글만 써왔다. 거의 2년 정도.


  이제는 세상도, 나도 많이 변했다. PMP는 유행 대열에서 엄청나게 뒤로 밀려났다. 대신 그 자리에 스마트폰이 들어왔다. 오픈소스OS인 안드로이드는 수많은 '아마추어 개발자'들을 만들어냈다. 어플리케이션 개발자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이건 iOS도 마찬가지일테니까). 오픈소스OS인 만큼 수많은 커스텀롬, 커스텀커널들이 쏟아졌다. init.d 트윅부터 시작해서 나는 무슨말인지도 알아먹기 힘든 수많은 용어들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나같은 라이트유저가 아니라 커스텀롬이나 커널을 직접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직접 만들지는 않더라도 빌드하는 사람도 많았다. 의외로 중고생들도 많았다. 나는 여기에서 손을 뗐다. 재패니메이션도 비슷했다. 나로서는 더이상 큰 관심이 가지 않는 분야 중 하나였다. 여기에서도 손을 뗐다. 이제 내가 전할만한 정보나 지식이 별로 없다. 소매상입니다, 근데 취급하는 물품은 없네요. 이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유시민 씨의 글을 읽다가- 처음에는 못느꼈는데, 나도 이제 슬슬 한 분야에 대한 글을 조금 더 써봐도 즣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치학이라거나? 근데 이 쪽도 내 지식은 거의 없다시피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 어쨌든 뭐랄까, 요즘 글을 읽다보면 작가들이 자기가 쓰는 글에 대한 고민, 자기가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같은게 많아서 나같은 사람도 자꾸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좋은 일이지. :)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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