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기 자신을 뭐라고 정의내리겠어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그건 일종의 허세였고, 자의식 과잉이었지만, 동시에 나의 핵심적인 정체성이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글을 쓰고 있는 것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고, 꽤 오랜시간 동안 그런 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글을 읽고 씁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 거기서부터 대답이 곤궁하다. 아, 그러고보니, 제가 별로 쓰는 글이 없네요. 그리고 끝. 어릴적, 판타지 소설이 좋아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래서 내가 직접 써보기도 했고(완결낸 작품은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거기서부터 블로그가 시작되었다. 힘들어하면서, 별로 글도 안쓰면서 아둥바둥 블로그를 끌고 가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내 몇 년을 가로지르는 핵심적인 부분에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없이 올린 글들로 친구가 "이거 너야?"라고 물어오는 일도 있었다. 그런 글들을 쳐냈지만, 이제는 내가 딱히 숨길 필요가 없어서, 굳이 필터링하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었다. 그 정도의 차이만 있었다. 몇 년 동안, 나의 삶에서 다소 변두리로 밀려나긴 했지만, 글을 쓰는 삶은 그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었다.


한동안 글쓰기를 멀리했다. 딱히 이유가 있는건 아니었다. 나에게도 글은 이제 지지부진한 것이 되어버렸고, 다양한 매체들, 특히 영상매체에 많은 자리를 내준 탓이었다. 나는 워낙에 '구시대적 인간'이라, 그런 새로운 매체와는 연이 없어서 나는 순식간에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전락이라는 표현은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을 비하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간 컨텐츠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두 축 중 하나를 잃어버렸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삶이 힘들수록, 나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글이라는 것은 곧 노동인지라, 내가 여유롭지 않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써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남에게 보여줄만한' 글은 나오지 않았다. 일기장에 써내려간 글들은 감정의 쓰레기통같은 글들이라, 그대로 비워버리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마저도 아까워 버리지 못했지만, 누군가에게는 보여줄 수도 없고 보여줘서도 안될, 그런 글들이었다. 글쓰기로부터 멀어질 수록, 내 삶은 조금씩 피폐해지고 있었던 셈이다.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서, 이번 기회에 조금 더 많은 글을 읽고 쓰기로 결심했다.


이번 학기, 편한 과목을 찾다가 내 흥미와도 걸맞는 과목을 하나 찾았다. "튜터링을 통한 글쓰기 능력 신장." 우리 학교에서는 ACE사업의 일환으로 글쓰기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게 꽤나 새로운 자리다. 대학의 교육선도화사업 중 일환인만큼 핵심적인 내용은 학술적인 글쓰기에 있지만, 아무 글이나 가져가면 다 봐주는 그런 곳이었다. 튜터에 따라 대단히 좋기도, 대단히 애매하기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흔치 않아서, 수업 과제를 낼 때면 꼭 들러서 제출했떤 곳이기도 하다. 그런 글쓰기를 수업에 완전히 밀착시킨, 그런 과목이 "튜터링 글쓰기" 과목이었다.


교내 신문사의 모니터링도 시작했다. 3주 분량의 글에 대한 모니터링을 원고지 6장 반 안팎으로 쓰는 일이다. 아무래도 나 자신에게 글쓸 동기가 없을 때, 과업처럼 쏟아져내리는 글쓰기는 즐거울지 어떨지는 확신하지 못할지언정 분명한 인사이트를 주는 법이다. 


새로운 매체를 찾아 헤맸었다. 남궁인 작가(라고 부르면 되는 것일까)의 영향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써볼까도 했지만, 새로운 계정을 파기는 애매하고 원래의 계정에 글을 써나갈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두 편의 긴 글을 쓴 적은 있었지만, 그 계정은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운명에 처해있었고, 그런 곳에 긴 글을 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 미디움까지 많은 곳을 보다가, 결국은 이 곳, 내 원래 블로그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 컸었는데, 그런 마음도 다소 사그라들었다. 부대비용을 대기 위해 광고를 걷어내지는 않겠지만, 어디까지나 글을 쓴다는 행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뭐 어떠냐 싶은 생각이 더 커졌다. 읽히는 글이어야 함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이 굳이 "읽혀야만 하는 글"은 아닐테니까.


그렇게, 언제나 하는 말처럼, "글로 돌아가려고" 부단한 노력을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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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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