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행: 비봉, 북한산 순수비, 사모바위와 문수봉(5.5km, 727m)

얼마전에 인바디검사를 했는데, 엄청난 양의 체지방을 빼야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사실 대단히 좋은 수치가 나오지 않을거라는건 대충 예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저런 결과를 받고나니 더더욱 충격... 그래서 재빠르게 운동을 처방했다. 때마침 친구가 등산을 다니면서 같이 가자고 하길래 냉큼 따라나섰다. 그렇게 나이에 걸맞지 않게 20대 초중반 3인방의 북한산행이 시작됐다. 어떤 결말을 맞을지도 모른채로..




다 끝나고 나서니까 하는 이야기지만, 참 겁이 없었다. 북한산이라고 하면 절대 쉬운 산은 아닌데, 우리가 너무 막 올랐다. 우리가 다닌 산길은 총 5.5km, 가장 높은 지점인 문수봉은 727m였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갔었는데, 북한산을 갈 때는 반드시 장비를 챙겨서 가야겠다. 일단 장비가 없으면 위험한 길도 많고(바위산이라서 내리막이 답없이 미끄러져내려올 수밖에 없는 곳이 아주 가끔 있는데, 등산화는 접지력이 있어서 나름 쉽게 내려올 수 있는 반면 일반 신발은 여지없이 미끄러진다),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투습성이 좋은 옷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최소한 등산복, 등산화는 필수적이고 등산가방, 등산스틱도 있으면 좋다.


탐방로 안내사진은 찍어놨지만 실제로 쓰지는 않았다.


우리가 정한 등산로는 이북5도청에서 버스에서 내려서 비봉탐방지원센터 쪽 입구를 통해서 들어가는 경로였다. 마포 쪽에서 지하철 6호선을 타고 역곡역으로 이동한다음, 역곡역 근처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이북5도청 정류장에서 내렸다. 이북5도청 쪽에서 내리면 비봉 입구까지는 금방 연결된다.



여기에 서있을 때만 해도 몰랐지... 내가 오늘 어떤 상태로 집에 가게 될지... 사실 북한산을 간다고 했으면서 그저 서울 안에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험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워낙에 체력이 없는 내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타기 시작했던 셈인데, 북한산 자체의 난이도와는 별개로 내 체력이나 산행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산타는 모두가 감탄했고 우리도 깜짝 놀랐던 그 날의 서울하늘. 햇볕 아래에선 타는 듯이 뜨거웠지만 그래도 그늘에선 바람이 나름 선선하게 불어서 등산하기에 아주 나쁜 날씨는 아니였다. 눈에 보이는 풍경만으로는 이런 날이 일 년에 몇 일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 때도 힘들기는 했지만 아직 체력은 붙어있었던 때라 페이스도 나쁘지 않았다.



북한산에 고양이가 그렇게 많다더니.. 갑자기 산 한복판에서 검은 고양이와 마주쳤다. 아무래도 길냥이로 자라 산냥이로 편입(?)된 친구인 것 같았다. 친구가 밤을 하나 던져줬는데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근데 산동물에게 가급적이면 먹지를 주지 말라는 표지판을 한참 뒤에(청수동암문 쪽이었던듯하다)야 마주치게 된다. 음... 물론 정상에 산동물이 많다는 이야기도 많이 봤으니 이해는 가지만 아무래도 아래쪽에도... 하나쯤 붙여주셔야하는 것 아닐까... 그래도 이 친구는 산에 잘 적응한 모양인지, 사람들이 많이 쉬어갈 것 같은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가 간식으로 아무리 유인을 해도 따라나오지 않는걸 보면 북한산과 등산객들의 생리에 잘 적응한 고양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힘들게 비봉에 도착. 사실 처음에는 비봉에는 못올라갈 것 같다며 포기한 우리였고 가서 그 가파름(?)에 다시 한 번 포기한 우리였지만 결국 아저씨들의 꾐(?)에 넘어가 북한산 순수비까지 보고 왔다. 많은 사람들이 비명지르며 올라가고 비명지르며 내려가는 곳이었는데, 그 자체가 사적이라서 그런지 로프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더 무서웠다. 말 그대로 특급 공포체험... 진짜 올라가다가 다리에 힘 한 번만 빠지면 그대로 추락하기 십상인 곳이었다. 위에 올라가서 잘못 쉬면 고립되기 딱일 듯 했다.



가파르고 험난한 비봉을 오르면, 그 곳에 뜬금없이 진흥왕 순수비가 있다. 먼저 밝혀두자면, 이건 복제품이다.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국보급 문화재가 이런 완전히 개방된 공간에, 그것도 등산객이 올라가서 만지고 포즈취하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방비하게 방치되어있을 리가 없었는데.. 아무래도 다들 비봉에 올라왔다는 훙분감과 올라오며 느낀 공포감에 제정신들이 아니었던 듯... 근데 생각해보면 복제품인 걸 모르고 올라서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제가 요즘 치고는 나름 바람이 불었던 날이긴 했지만, 비봉은 워낙 탁 트인 곳에 혼자 높아서 바람이 정말 심하게 분다. 평지에도 바람이 꽤 불 정도가 되면 이 위에서 장비 없이 등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여름의 막바지에 이렇게 비봉을 즐긴 것이 다행일지도..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상은..

쿨하게 포기선언


쿨하게 포기선언을 했다. 진짜 안그래도 겁 많은데 중간에 올라가다보니 온 사지에 힘이 빠져서... 이대로는 자연스럽게 미끄러져서 세상과 하직하고 진흥왕 순수비를 지키는 망령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개똥을 구르더라도 살아있는게 낫다는데 아무리 좋은 문화재라도(진짠줄 알고 있었음) 내가 살아야지... 저승가서 진흥왕을 직접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놓고 결국 친구들의 부름과 온 북한산에 퍼질듯이 외쳐지는 내 이름에 반 포기 반 강제로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사모바위도! 사모바위에 비하면 비봉은 엄청 막 쌓은 돌같았다. 오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아마 없지 않을까...? 법적으로 오를 수 있더라도 암벽등반 장비가 있어야될 것 같은데..) 겉에서 보기엔 비봉보다 훨씬 세련미가 있었다. 자연풍경 속에서 세련미를 찾는 모순은 차치하더라도... 마지막 사진이 사모바위 있는 쪽에서 본 비봉인데 진짜 못생겼다. 이 정도면 추석(醜石)이라고 부를만한거 아닌가... 



왜 이름엔 문수봉까지 엄청 들어와있는데 문수봉은 스킵하고.. 청수동암문 사진도 없고 뜬금없이 대남문이냐면... 내가 이 맘때쯤 체력이 완전히 다 나갔기 때문이지 왜겠어.. 맨 위에 탐방로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문수봉부터 대남문까지의 코스는 공식적으로 '어려움'으로 구분되어있는 코스였는데, 우리는 아무도 모르고 그 경로를 택했다. 사실 코스가 워낙 외길이라 돌아온 길로 내려가던지 대남문을 가던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했던 상황이었다. 근데 이 코스가 진짜 미친듯이 노답이라 끝도 갓도 없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길이 한참을 계속됐다. 



이 코스는 제대로 된 장비없이... 특히 충분한 체력 없이 오르기엔 굉장히 험하다. 길 자체도 험하고 쉴 곳도 마땅히 없는데다, 초반부가 아니라 우리같은 짧은 코스에서는 거의 종반부기 때문에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많은 등산사고가 충분히 체력을 고려하지 않고 막 올라가다가 내려오는 길에 다리가 풀려서 발생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조심스럽게 가야할 코스다. 물론 나같은 체력 바보도 어느 정도 오른 코스니까 이 코스는 절대 못가는 코스다!! 라고 말할 생각은 없음. 무엇보다 등산 경험이 어느 정도 있따면 우리가 올랐떤 코스 자체가 오르는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든 코스는 아니었던 것 같다.


대남문을 통해서 내려오는 경우 대남문 윗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래로 내려와 대남문을 직접 통과해야 한다. 안그러면 또 새로운 봉우리를 만나러 가게 된다. 진짜 사고로라도 그렇게 되면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니 조심하자.. 우리가 그렇게 될뻔 해서 하는 이야기다..



내려오는 길에 쭈꾸미오리로 깔끔하게 ^3^ 안그래도 술은 못먹고 체력은 없고 등산해서 그나마 없는 체력마저도 다 탕진해버려서인지 막걸리 한잔 반 먹고 그대로 취했다. 물론 먹은 막걸리가 많은건 아니었으니 금방 깨긴 했지만... 뭔가 건강에 엄청 안좋았을 듯.. 우리가 먹은 양이 산행하면서 썼던 열량을 가볍게 압도할 것 같으니 절대 다이어트에 유의미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 부족한 근육량(1.5kg....)을 키우는 데 조금은 일조하지 않았을까... 싶다. 날씨도 좋았고 오랜만에 제대로 운동다운 운동을 하는 것 같아서(무산소보단 유산소를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필라테스는 무산소에 가까운 것 같으니) 더 좋았다. 그럼 우리 3인방은 다음에 또 어떤 산을 향하게 될까...? 별도로 산행 카테고리를 만들었으니 좀 열심히 다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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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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