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의 끝자락에서


감상에 젖어 저번 연말을 정리하는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2015/12/18 - 종강을 맞이하며 


그때는 종강을 맞이하며 그런 글을 썼다. 복학하고 참 정신이 없던 때였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고, 옆에는 소중한 사람이 생겼다. 이번 학기에는 많은 전공 과목을 소화해야 했다. 결과는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사실 내 기대치를 채우지 못했을 뿐 괜찮은 수준이었다. CGPA는 또 조금 깎여나갔지만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교훈과, 주변의 많은 훌륭한 사람들과 또 그들의 지인들 중 훌륭한 사람들, 그렇게 많은 사람들알 만나고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인간관계가 참 좁은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사실 별다른 성장을 거듭해온 것은 아니다. 다만 나 혼자서 하는 일에 대해서는 꽤 능숙하고 읽고 쓰는 데에도 남들에게 뒤지지는 않는 정도는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내 능력의 한계를 직면한 학기이기도 했다. 능력의 한계라기 보다는 사실 새로운 세계를 알았다고나 할까. 많은 사람들이 나와는 다른 영역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었다. 막연히 내 학점만을 믿고 또는 내 머리만을 믿고 있었던 나 자신을 반성할 계기이기도 했고, 나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학기이기도 했다. 학점을 받는 과정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사실 투입한 시간에 비하면 과분한 학점을 받았다. 그럼에도 나의 높은 기준은 나를 괴롭혔다. 그 가운데에서도 혀니는 내 옆을 지켜주었는데,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표한다. 아마 너가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방학이랍시고 평화롭게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없었을 거야.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내 진로를 다시 수정했다. 정치외교학과라는 학부, 법이라는 관심사, 행정과 공직에 대한 선호의 균형은 사무관이 아니라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도전하면 사무관은 따놓은 당상인 것 같지만 물론 그렇지도 않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간에, 나는 다시 법의 길을 걷기로 했다. 법은, 알면 알 수록 묘한 매력이 있다. 로스쿨에 가서도 이런 생각을 계속 안고 공부할 수 있을까. 사실 막연한 공포감이 앞서는 한 학기였다. 로스쿨에 대해서 알면 알 수록 그 곳은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반문하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가까운 자신감과 에너지를 끊임없이 불어넣으려 노력했다. 방학을 맞아서 단행본으로 나온 법학 책들을 조금씩 보기 시작했는데 읽을 수록 그 논리가 매력적이다. 내가 소화해낼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흥미롭다. 동시에 법 실무 자체는 하나의 '기술'이라는 점에서 학문과 기술이 적절한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헌법과목만 4과목을 들어서인지 지금은 헌법에 가장 큰 관심이 간다. 다음 학기에는 민형 쪽도 들어보고 싶은데 어떤 한 학기가 될까.


사소한 것에 분노하고 큰 것에 눈을 감은 한 해였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큰 것이 있어서 나의 삶의 기반을 흔들어댄 한 해였다. 가장 큰 행복과 그에 뒤따르는 많은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럼 나는 한 발짝 성장했을까. 솔직히 말하면 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장이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는 점에서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성장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이번 학기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롤모델이 되어주었다. 나의 옆을 지켜준 혀니, 공학도로서 내게 표본과도 같은 P, 법을 공부하고 싶은 가운데에 별로 친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향해 무럭 무럭 나아가고 있는 L, 약대에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C, 나와 어쩌면 같은 길에서 언젠가 마주칠지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 2년 여의 대학 생활에서 가장 좋은 교수님을 만났고,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교수님에게 내 나름의 실망을 느껴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다가오고 또 멀어져갔다. 전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과는 친해지고, 나와 정말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는 멀어지는 한 해였다.


한해가 저물어간다. 한 해라고 해봐야 겨우 하루의 끝을 경계로 거창한 숫자가 바뀜에 다름 없지만, 그럼에도 이런 한 해의 변화에 매년 감동하고 매년 묘한 감정을 느끼고 매년 새로운 의지를 다진다. 그것은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은 일이다. 내년에는 아마도 더 좋은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고, 올해만큼이나 나쁜 사람들과 자주 갈등을 빚고, 올해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이뤄내면서 또 많은 아픈 일들이 있고, 그 너머에 또 더 좋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저 단순히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내일을 기약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없다(물론 지금의 나도 어리지만).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일정 부분 아픔을 인정하고, 미래에 다가올 아픔을 눈 감지 않고 똑바로 쳐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은 냉소적이고 조금은 비관적인 이런 삶의 자세가 어느 정도 나의 몸에 배어버려서 이제는 조금 털어내야할 정도지만, 역시 내년을 생각해보자니 그런 쌉싸름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새로운 한해는 또 다른 소중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여느 해와 다름없이, 그러나 여느 해보다도 더 소중하고 중요한, 기억 속에 잊지 못할 또 한 장이 되어주기를 바라본다. 내년의 끝자락 즈음에는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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