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자와 호노부, 안녕 요정

 

 

요네자와 호노부의 장편소설, '안녕 요정'이다. 본래는 고전부 시리즈의 한 권으로 들어가기로 되어있었다는 소설. 사실 출판이 무산된 이후로 다시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오기까지 많은 부분이 다듬어진 것 같다. 등장인물도 모두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소설의 분위기도 달라졌으리라. 그래서인지 기존의 고전부 시리즈와는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기존의 고전부 시리즈가 훨씬 가벼운 느낌의 소설이고, 안녕 요정같은 경우에는 훨씬 착 가라앉는 것 같은 내용이다.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는 전개, 그리고 예상했던대로 끝나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 책에서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유고슬라비아의, 아마도 고위관료의 딸인 마야를 만난 주인공 일행의 이야기. 그리고 두 달의 일본생활을 마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아마도 자신의 나라를 지켜보고자 노력했을 소녀의 최후를 그린 이야기다. 정확히는 소녀의 최후라기보다는 그런 소녀를 떠나보낸 이들의 이야기.

 

마야를 제외하면 네 명의 인물이 나온다. 서술자 역할을 도맡고 있는 모리야 미치유키, 그리고 고전부 시리즈에서 오레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다치아라이 마치, 숙박집의 딸 시라카와 이즈루, 궁도부 후미하라 타케히코. 이 뒤로 다치아라이 마치가 등장하는 소설이 쭉 이어진다고 하니 소설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이는 다차아라이라고 하겠으나, 적어도 안녕 요정 안에서는 모리야 미치유키가 주인공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소설의 절반 이상을 마야와 보낸 시간으로 채웠지만, 사실 이 소설의 가장 핵심이 되는 이야기는 그런 마야를 따라가려했던 모리야의 자기번민과 일종의 자기혐오다.

 

미스터리 소설이기도,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 아마 미스터리 로맨스라고 하는게 적절한 정도이지 싶은데, 소설 속의 서술로는 다차이라이도 모리야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것 같지만 누가 뭐래도 이 소설의 중심은 마야와 모리야다. 마야가 모리야를 이성으로서 좋아했는지는 정확하지 않고, 실제로 모리야는 마야에게 연정을 품었던 것인지, 자신을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줄 구원자로 여겼던 것인지도 명확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야가 마야에게 품는 감정은 일종의 연정이며 동경이다. 결국 모리야는 마야를 따라가지 못했고, 마야는 자신의 고국으로 떠나 눈을 감았다. 끝까지 그 감정은 명확하지 않다. 마야의 죽음은 모리야에게 구원자의 죽음이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었을까. 애초에 이 소설은 의도적으라고 봐도 될 정도로 '사랑'이라 부를만큼 뜨거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소설에서 '눈 앞에 나타난 드라마'라며 구체적으로 집어 표현하는 것을 보면, 무게는 전자에 가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드라마를 기다린다.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에서,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기념으로 하는 연애는 사양"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역설적이게도 소설의 주인공들은 드라마를 사양하지만, 정작 그 드라마의 밖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는 항상 그런 드라마를 기다린다. 이 소설은 그러한 맹점을 찌르는 소설이기도 하다. 눈앞에 나타난 드라마를 잡으려던, 그저 잡으려고만 했던 모리야의 실패를 통해서.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희망의 드라마라기 보다는 절망의 드라마일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고슬라비아로 떠나겠다는 마음을 완전히 접지 못하는 모리야의 모습은, 일면 드라마에 대한 아직까지 포기하지 못한 집착이요, 또 일면으로는 절망 속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일 것이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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