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추억

 

 

   기회가 되어 살인의 추억을 봤다. 꽤 오랫동안 수작으로 손꼽혀왔던 영화인데, 계속 봐야지봐야지 하다가 이제야 보게 됐다. 이 영화에 관해서 그런 얘기가 기억난다. 영화의 한 장면을, 나는 초등학교였는지 중학교였는지 친구에게 들었던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청소년 관람불가인 영화니까 그 친구가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 이야기도 사실은 보면 안됐을 것이었을 게다. 왠지 영화를 보기 시작하자마자 그때가 생각났다. 뭐, 어쨌든 그만큼이나 오래된 영화라는 거다. 꼬맹이였던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군대까지 다녀왔다. 세월이라는 건 그렇게나 빠르다. 그리고 이렇듯 한때를 뜨겁게 달궜던 작품은 그렇게 일종의 마일스톤이 된다. 아, 이 영화가 나왔던 때가 이럴 때였는데 하는.

 

   이 영화에는 내가 좋아하는 김상경이라는 배우가 나온다. 사실 좋아하는 배우가 많지는 않지만(사실 그간 영화고 드라마고 그다지 즐겨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김상경이라는 배우는 MBC 드라마스페셜로 방영됐던 ‘화이트크리스마스’라는 작품으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였다. 이 영화에서 송강호와 김상경 중에 누가 진짜 주인공이냐고 하면 아무래도 김상경에 가깝지 않은가 싶다. 이 사건을 통해서 가장 입체적으로 성격이 변한 것도, 그 과정에서 붕괴되어버린 것도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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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실화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줄거리에 대해서는 크게 왈가왈부할 게 없다. 영화는 극적인 긴장감을 적절히 유지하는 선에서 깔끔한 연출, 너무 단순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좋은 구성을 보여준다. 또한 비오는 날씨나 늦은 밤, 갈대밭처럼 감각적으로 온전치 못한 환경을 반복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영화는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잡지 못하고, 영화에서 오랫동안 깔아놓은 복선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다. 빨간 옷만 노린다던 첫 추리는 금방 반박당했고, 영화는 박해일을 범인으로 몰아가지만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밝혀내지도, 그렇다고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주지도 않는다.

 

   이러한 2% 부족한 내용은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다. ‘영구미제’로 남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니만큼 범인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범인을 잡아내는 ‘해결’을 영화 속에 담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이러한 결말은 관객들로 하여금 허무함을 느끼게 함으로써, 당시 살인사건과 관련되었던 수많은 사람들(경찰을 포함하여)이 느꼈던 막막함, 허무함, 무력감을 간접적으로 체험토록 한다. 2시간동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우리는 누가 범인인지, 어떻게 된 사건인지를 모르는 것처럼, 그들 역시 몇 년이나 그 사건에 매달렸지만, 누가 범인인지, 어떻게 된 사건인지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다. 우리는 ‘결’이 빠진 ‘기-승-전’의 구조를 통해 그러한 감정을 체험하게 된다.

 

   영화에서 송강호와 김뢰하는 부패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실적을 적당히 채워가며 승진하고 싶은, 여러 작품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무능한 경찰’의 전형이다. 그에 비해 서울에서 내려온 김상경은 비교적 유능하고 합리적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이라는 표현이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것처럼,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도시적인 이미지를 가진다. 여기에서도 도시적인 이미지란 근대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삶을 대표하는데, 이는 송강호가 점을 치고 점쟁이가 하라는 대로 알 수 없는 의식까지 치르는, 어떻게 보면 전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과 대조되면서 더욱 강조된다. 한편 송강호가 억지로 자백을 받아내고, 말도 안되는 추리를 계속 제시할 때 김상경은 훨씬 합리적이고 설득력있는 추리를 계속해낸다. 그러나 사건이 계속될수록 김상경은 송강호의 모습을 닮아간다. 증인을 구타하고, 욕설을 내뱉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믿는 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이를 오히려 말리는 송강호의 모습은 영화의 도입부와는 정반대의 의미에서 대조적이다.

 

   이러한 김상경의 붕괴는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경찰이 느꼈던 무력감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데, 이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김홍중 교수가 말한 ‘주권적 우울’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 사건이 당시 우리 사회에 안겨줬던 충격으로 확대된다. 김홍중 교수는 세월호 사건이 유가족들에게 자신들이 사랑했던 이들을 일종의 ‘의문사’에 처하게 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이들을 마음이 부서진(heartbroken) 상태로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는 전국가적으로 주권적 우울감을 안겨주었다고 말한다. 이 영화의 바탕이 되는 화성연쇄살인사건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김상경의 붕괴는 곧 형사들의 붕괴과정이며, 경찰조직이 자신들의 무력감을 체험한 현장이며, 일반 국민들로 하여금 굉장한 무력감이나 허망함,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되는 공포를 느끼게 했다. 김상경이 맡았던 서태윤이라는 캐릭터가 빠르게 무너지고, 그 자리를 전근대적인 폭력성에 빼앗기는 것은 이렇듯 경찰이나 법과 같은 국가조직, 사회체계에서 당시 관련자, 나아가서는 전국민이 느꼈던 무력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과 관련해서는 김홍중, 2015, 마음의 부서짐: 세월호 참사와 주권적 우울, 사회와 이론 2015년 1호 통권 제26집, 143-186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글은 논문이지만 그다지 딱딱하지도, 어렵지도 않으며, 세월호 참사는 물론이고 어떠한 ‘참사’가 그와 관련된 사람들, 그리고 간접적으로나마 그것을 지켜본 이들에게까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미있는 통찰을 제시했다)

 

   영화의 종막에서 이러한 김상경은 그러나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으레 주인공들이 그 사건이 끝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김상경을 다시 비추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이 영화는 상당부분 송강호의 관점에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으로 치자면 전지적 작가시점과 1인칭 주인공/관찰자시점이 적당히 뒤섞인 것 같은 느낌인데, 송강호는 여기에서 관찰자이자 주인공의 위치에 서있다. 그런 송강호가 문득 지나가는 길에 옛 시체를 발견했던 수로를 살피는데, 한 아이가 얼마전에도 거기를 바라보며 “자신이 옛날에 했던 일이 생각나서 들러봤다”며 똑같이 살폈던 “그냥 평범한”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영화는 거기에서 송강호를 클로즈업하며 끝난다.

 

   이 장면은 조금 아이러니하다. 송강호는 영화의 분량 거의 대부분동안 시종일관 비합리적인 수사방식을 고수하는데, 이를 보여준 두 가지 장면이 “얼굴을 보면 안다(보다보면 느낌이 온다)”와 “범인은 현장에 다시 돌아온다”였다. 결국 범인은 현장에 다시 돌아왔지만, 그의 얼굴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특징을 아무리 물어도 “그냥 평범해요.”라고 밖에 답할 수 없는.

 

   우리나라 스릴러에서 최고의 웰메이드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인 만큼,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영화는 전혀 빛이 바래지 않았다. 어느 작품이나 수작은 또다른 수작과 엄청난 양의 평작을 낳는다. 살인의 추억도 그랬다. 그래서 살인의 추억이 보여준 여러 기법이나 이야기 구성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이는 그동안 살인의 추억이 한국식 스릴러의 좋은 표본으로 남아 많은 수작들을 낳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가 훌륭한 영화라는 점은 반박할 수가 없다. 숱한 작품들이 나왔지만, 그들은 살인의 추억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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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목을 가장 집중시켰던건 의외로 김상경이나 송강호가 아닌 박해일이었다. 박해일의 아주 묘한 표정이 도저히 지워지지를 않는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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