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이번 학기에 가장 의미없었던 수업을 꼽으라면, 교수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역시 중핵필수였던 두 과목을 꼽아야할 것 같다. 교수님들은 열심히 하셨고, 나 역시 나름 열심히 수업에 임했지만, 중핵필수 과목들은 그 특성상 이런 '의미없음'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도 그런 과목들이 내게는 꽤 흥미로웠다. 그런 수업에서는 학문적 성취보다는 주로 삶을 살아가는 눈, 식견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거창하고 잘 포장된 표현을 사용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수업 자체가 재밌고 유익했다는 이야기다. 그런 수업 중 하나가 바로 '비평적 글쓰기 연습'이었다. 생각보다 글쓰기와 무관한 수업이었고 결과적으로 기말 발표로 대체되었던 기말고사가 학점을 갈랐지만, 다른 사람의 발표나 비평문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고, 중간고사 이전까지 교수님이 진행하셨던 수업도 흥미롭게 잘 들었다. 거기에서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이 한 편 소재로 나왔었는데, 바로 이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이 그림은 고흐가 고갱과의 동거생활을 정리한 이후, 이미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이후에, 정신병원인지 요양원인지에서 그린 그림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던 것 같다. 이 묘하게 정돈되지만 시끌벅적한 그림이 나는 좋았다. 무엇보다 조용하고 잔잔한, 별이 빛나는 조용한 밤을, 고흐는 왠지 모르게 번잡하고 화려하고 화사하고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느낌으로 화폭에 옮겼다. '난기류'를 잘 표현했다는 영상을 본 적도 있는데, 어쨌든 수많은 원을 그려낸 이 그림은 조용한 밤의 정경이라기 보다는 그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과 그 모습과는 대조되는 마을의 정경이 이목을 끈다. 과연 그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이 그림의 영향도 있을테고, 원래 밤이란 것이 그럴테지만, 왠지 모르게 밤에는 그저 걷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날씨는 가을 정도가 좋다. 그것도 늦가을. 바람은 차지만,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지는 않을정도의 적당한 추위가 함께하는 밤이 좋다. 장소는 신촌이 좋겠다. 정확히는 신수동, 서강대 남문에서 정문에 이르는 조용한 길이 좋겠다. 신촌 하면 연대나 이대 있는 쪽이 더 유명하겠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잘 모르는 곳이다. 무엇보다 왠지 밤에는 그런 큰 대로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 포장마차, 불꺼진 식당, 적당히 맨정신인 사람들과 적당히 술에 취한 사람들이 있는, 우리 학교 근처가, 나에게는 가장 좋다. 나의 글 곳곳에서 보이는, "어느날 밤 길을 걸으면서 했던" 생각들의 발상지는 대부분 이 곳이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걷는 것은, 단순히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날 밝을 때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덜 볼 수 있고, 그 이상으로 일단 길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으슥하지는 않지만 시끄럽지도 않은 길은 자연스럽게 사람을 착 가라앉힌다. 언젠가, 윤동주의 시에서 봤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을 '침전'시키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착 가라앉는 것은 일정부분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상으로 장난스러웠던 모습을 걷어내고,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고, 마음을 정리하게 해준다. 그리하여 솔직히 고백하자면, 별이 빛나는 지의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별이 빛나는 밤은 정취를 더하겠지만, 사실 그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는 그런 별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 뻔하니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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