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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글로 돌아오다

종강을 맞이하며

소민(素旼) 2015.12.18 21:30



 드디어 종강을 했다. 이번 학기 6과목의 수업을 들었다. 그 중 가장 의미있는 과목이라 부를 수 있을 <현대 국제기구의 이해>가 끝이 났다. 왠지 학기가 끝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학교로 돌아왔고, 길고 길었던 사회과학부생의 딱지를 떼고 정치외교학과라는 새로운 딱지를 붙였다. 길고 길었던 1학년이 끝났다. 3년에 걸친 1학년이었다. 장난스레 저 아직 1학년이데요, 하는 말을 참 많이도 하고 다녔다. 이젠 그런 소리도 하지 못하게 됐다. 예비 헌내기들에 섞여, 나도 이제 2학년이 된다. 아직은 얼떨떨하다. 마지막 훈련을 받으면서, 상황실에서 방독면을 쓰고 헥헥 거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곧 있으면, 페이스북이나 여타의 소셜미디어에서 봐왔던 생활을 하겠구나. 학교에 눈내린 모습을 한 번쯤은 볼 수 있겠구나. 그리고 지금, 조금은 늦었지만, 그렇게 그리던 학교로 돌아오게 됐다. 많은 일이 있었던 군생활이 끝난 것이, 아마도 올해의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변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이란 참, 변하기가 쉽지 않다. 고등학교, 재수생, 새내기, 새내기로서 단과대원, 학과생, 섹션원, 그리고 거기에서 벗어나 동아리원, 군인, 다시 민간인이 되고 동아리에서 얼떨결에 부회장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나와는 다른 많은 사람을 만났다. 저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은 사람도 많았고,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싶다, 하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다. 문득, 나는 나의 결점을 그대로 안고 있고, 나의 장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독히도 안변했다.


 그건 나만의 일은 아니었다. 학교에 돌아와보니 새로운 얼굴들만큼이나 익숙하고 정겨운 얼굴들도 많았다. 숫기가 많아 내색하지 못했지만 다들 반가웠다. 군대를 가기 전에는 한없이 어려웠던 사람이,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왠지 편해지기도 했다. 반대로 군대를 가기 전에는 한없이 편했던 사람이 이제는 너무나도 어렵기도 했다. 물론, 가기 전에나 간 후에나 여전히 친한 사람과 여전히 서먹한 사람과 여전히 데면데면한 사람과 여전히 존경스러운 사람과 여전히 안타까운 사람과, 그런 사람이 훨씬 많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지독히도 안변했다. 학교도, 학생도, 교수님도 교직원분들도, 나 자신도 친구들도 모두 지독히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위치 뿐이었다.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송곳>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그건 굳이 운동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건 어쩌면 우리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는 위치가 바뀌었다. 나는 더 이상 새내기가 아니었다. 더 이상 그저 숫기없는 동아리원 한 명이 아니었다. 더더욱, 나는 이제 군인은 아니었다. 내가 서있는 곳이 달라졌고, 그만큼 많은 풍경이 바뀌었다.

 

 

 어느 학기나 롤모델을 한두명 쯤은 잡는 것 같다. 군생활할 때도 그랬지만, 학교를 다니다보면 친하지는 않더라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말 한마디 사담을 나눠본 적은 없지만 자주 마주치는 교수님들, 교직원들, 외부인들,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롤모델도 그만큼이나 쉽고 빠르고 많이 만들어진다. 대개 어느 학기나 존경스러운 교수님과 존경스러운 학우(주로 선배)가 있다. 내가 휴학생 신분으로 군복을 입고 있을 때에도 그랬으니, 이번 학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인생에는 배워야할 사람이 참 많고, 부러운 사람들이 참 많다.


 나름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지만, 존경스러운 사람들은 여전히 존경스럽다. 그네들은 몇몇은 졸업을 했다. 안타깝다면 안타깝고, 좋다면 좋은 일이지만 몇몇은 아직도 학교를 다닌다. 개중에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아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번 학기에 이르러 조금의 존경스러운 사람들을 더 만났다. 그네들을 만난 과정도 복잡하고 다양하다. 나는 대외활동같은 것에는 영 관심이 없는데도 이렇게 많은 연을 만났다. 나는 소극적이고 낯을 가리고 숫기가 없어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어려워하지만, 그럼에도 4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새로운 인연을 이렇게도 많이 만났다.


 한 수업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서강대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를 바란다고, 뭐 정확히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 요지의 이야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연대단체 <맑음>에서도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나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학생과 교직원과 교원과 그리고 영리시설의 근무자들과 청소노동자분들과 그 모든 사람들, 심지어 같은 학생 안에서도 공대생과 문학도와 사회과학도와 자연과학을 배우는 사람들,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다루는 사람들, 너무 많은 선을 그어온 것은 아닌가 했다. 당연하게도 이번 학기에도 그렇게 많은 선을 긋고 다녔지만, 동시에 많은 선을 지웠다. 그 많은 공은 물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 교수님들의 한 마디,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의 한 마디가 뼈가 되고 살이 됐다.

 

 

 6개의 수업. 아무 생각 없이 주워담은 과목들이었다. 예컨대 앞서 말했던 현대 국제기구의 이해. 나는 국제기구에 진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딱히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솔깃하기는 했다. 개인적으로는 공직 지향이 강한 사람이라 더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많은 인터뷰에서, 국제기구는 그런 공직지향에 걸맞는 곳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어찌되었든간에 나는 국제기구에 딱히 큰 관심이 있어서 들었다거나 국제기구에 진출하려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수업에 만족했고, 좋은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께는 질문을 하러 딱 한 번 갔을 뿐이었다. 간담회라는 것을 했지만 사회학개론의 마지막 시간과 겹쳐 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또 한 명의 존경스러운(그리고 일방적인) 멘토를 얻었고, 삶의 척도를 또 하나 만들어냈다. 사회학개론과 함께 가장 고생한 과목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이야기인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 사회학개론. 사회학개론도 마찬가지였다. 사회학개론도 내가 딱히 사회학에 관심이 있다거나, 여러 학문의 개론을 들어보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의 발로는 아니었다. 내가 사회학개론을 들은 이유는 사실 거의 전부가 정치외교학 전공의 전공필수 과목이었기 때문이었다. 커뮤니케이션 입문은 너무 무서워서 듣지 못했으니까. 사실 처음엔 후회했었다. 사회학은 나라는 사람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동시에 깊었다. 깔끔하게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그 말인즉슨, 내 것으로 만들기가 어려웠다. 종강을 했고, 나는 여전히 그것들을 내것으로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수업에서도 좋은 교수님을 만났다. 2전공까지를 이미 골라놓은 상황에서, 3전공은 공공인재를 하고 싶었는데, 그 자리를 사회학에 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편안한 강의는 아니었다. 교수님이 주신 자료는 날것 그 자체였고, 요약해주신 자료도 내 수준에서 이해하기가 굉장히 벅찼다. 몇몇 학우님들께서 질문을 하셨는데, 솔직한 말로는 저 질문을 어떤 사고과정을 거쳐야 할 수 있는 것인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주신 자료를 읽다보면, 강의를 듣다보면, 사회학은 꽤나 재미있고, 우리에게 의의가 깊은 학문이었다.


 모든 수업이 그랬다. 이번에 나는 개론과목 2개와 전인교육원의 교양과목 3개, 그리고 (전술한) 전공과목 하나를 들었다. 개론은 모두 훌륭한 교수님을 만났다. 과목에 대한 이해나 관심을 키웠다. 교양과목은 열심히 들은 과목도, 그렇지 않은 과목도 있다. 모든 과목을 열심히 들을 정도로 성실한 학생도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 챙겨야할 것은 모두 챙겼다. 조교님의 실수로 결석체크가 되긴 했지만, 그 건이 정정이 되든 안되든간에 결석이나 지각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가장 후회했던 과목이 하나 있지만, 그 과목조차도 모두 끝나고보니 나 자신과 모두를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강의평가를 하면서, 마지막 카테고리에 ‘세계관’을 눌렀다. 이번 학기는 왠지 모르게 나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준 과목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심리학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열심히 들은 과목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과목은 왜 이렇게 내 짧았던 한 학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일까.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지켜보고 어린 내 조카를 바라보면서, 배우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새겼던 것 같다. 그렇게 재미없어하고 건성건성 들었던 과목마저도 내게는 큰 힘이 됐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과목이었다.

 

 

 2015년도 이렇게 끝이난다. 아직 2주 정도가 남았지만, 아마도 그 2주는 순식간에 없어질 것 같다. 한 주는 외국에서, 한 주는 동아리 재등록 서류를 만들면서 보내게 될 것 같다. 그러고도 8주의 기간이 남을 것이고, 그 8주 동안은, 아직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인강을 보고 싶기도 하고 그냥 자유롭게 보내고 싶기도 하고 미뤄놓았던 책을 실컷 보고 싶기도 하고 수영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2년의 끝을 군대에서 맞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실컷 썼지만, 이 3년간의 연말은 너무나도 크게 변했다. 한 해는 어리버리한 이등병으로, 한 해는 알거 다 아는 상병으로 맞았고, 올해는 어느새 민간인이 되어서 맞았다. 앞서 말했듯, 변한 건 위치뿐이었다. 그렇지만 위치만 변하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은 크게 변했다.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듯 많은 부분이 변했다.


 다음 한 학기는 또 어떤 시간이 될까. 나는 입대 전에 1학기만을 끝냈고, 앞으로 7학기가 남아있다. 휴학을 할 예정이기 때문에 내가 몇 년이나 더 이 학교에 있을지 모르겠다. 가능하다면 조기졸업을 하고 싶고, 프랑스로 짧은 교환학생도 다녀와보고 싶으니 남아있는 7학기도 7학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물론 7학기는 더 길어질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 길고 긴 7학기로의 ‘돌아옴’의 관점에서, 이번 학기는 나쁘지 않았다. 썩 괜찮은 학기였다.

 

 

 솔직히 고백해보도록 하자. 만족스럽지 못한 동아리 부회장이었고 만족스럽지 못한 학교 생활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아리 부회장으로서 그다지 열심히 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어느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주 추운 날이었는데, 학교 남문에서 집까지 걸어와야할 일이 있었다. 그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학기도 정말 아무 없이 보냈구나. 이렇게 또 첫 학기를 보내버렸구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것도 변한게 없었다. 나는 또다른 의미에서 소시민이 되어있었다. 운동을 한 것도 아니었고, 무언가 나만의 것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너무 삶에 찌들어 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싸한 무언가를 해내지도 못했고, 행복한 것 같지도 않았다. 누군가 “이번 학기는 어떤 학기였어요?”라고 물어보면, 거기에 “9월에는 인강을 보다가요, 10월에는 중간고사 공부를 하고, 11월에는 동아리 행사 챙기면서 레포트 좀 쓰고, 12월에 기말 공부했더니 학기가 끝났네요.”라고 답할 수 있는 그런 학기였다. 군대에서 내가 그렸던 학기는 아니었고 더더욱이 바람직한 학기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는 것은 성적 뿐, 남는 것은 학점 뿐이라며 굉장히 냉소적으로 한 학기를 보냈다. 그렇게 냉소적이게 한 학기를 다니면서도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이번 학기도 ‘미숙’했다.


 그렇지만 왠지 학기말시험을 준비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학기가 어디 있겠느냐고. 아마도 내 마지막 레포트를 쓰던 때였던 것 같다. 동아리방에 같이 있던 친구가 잠깐 나갔을 때였다. 문득 학기말을 정리하는 글을 한 편 써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쓴다. 실은 그 자리에서 쓰기 시작했던 글을,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서야 마무리한다. 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학기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나는 ‘돌아온 것’ 밖에 한 것이 없다. 새로운 동아리도, 대외활동도, 또는 그 비슷한 어떤 종류의 새로운 것도 하지 않았다. 또는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돌아오기나 했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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