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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학교에서도 국정교과서에 관한 성명이 나왔다. 의외라면 의외로,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인문대 교수님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대, 나아가 공대까지, 거의 전 단과대의 교수님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익숙한 이름도 보이고, 이 분도? 싶은 분도 계셨다. 개중에는 당연히 참여하셨을 거라고 생각했던 교수님 이름이 빠져 있기도 했다. 대학이란 그런 곳이고, 정치라는건 그런건가보다. 우리 사회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순수와 정치로부터의 분리를 요구한다. 반대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학문을 금한다. 우리 사회에서 폴리페서(polifessor)란, 그렇게 금기어가 됐다.

 

#2.

   아직은 학부생이지만, 그것도 2학기생이지만, 종종 대학을 다니면서, 왠지 모를 벅차오름이 있을 때가 있다. 내가 인생을 바쳤던 4년, 그 4년을 불살라서 여기까지 왔고, 그렇게 온 대학은 참 좋은 곳이구나. 내가 더 좋은 곳이든 더 나쁜 곳이든 다른 학교에 가서도, 이런 말을 했을지 어쨌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이 땅을 밟고, 이런 사람들에게 강의를 들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거의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내게 너무나도 큰 벽이었고, 장난스레 "교수님에게 내 정체를 밝히지 않고 조용히" 수업을 듣고 싶다고 말을 하고는 하지만, 대개 내 존경의 대상이었다. 학문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저렇게 멋지구나. 뿌리부터 먹물근성인 나에게도 그런 묘한 울림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공부가 좋다기 보다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공부란 그런 것이었다. 좋아한다고 해서 잘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한다고 해서 못하는 것도 아닌 그런 공부. 그저 나의 생활습성이 공부와 잘 맞았고, 고등학교 때 내가 잘했던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글과 공부를 꼽을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절대적으로 공부를 잘했냐하면 그건 아니었고, 결국 재수를 했다. 재수를 해서 지금의 학교 땅을 밟았다. 교수님들을 뵈었다. 교수님들을 보고 잠깐 학문의 길을 고민했다. 멀리 돌아, 이제는 공무원의 길을 간다. 이 대학이란 곳은, 나에게 그렇게 여러가지 의미를 주는 곳이었다. 나는 결코 학교를 열심히 다닌다거나, 많은 사람을 만난다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하나의 동아리와 거진 혼자듣는 강의만으로도 내 인생은 충분히 가득찰 수 있었다.

 

#3.

   정치는 세속적인 것이고, 학문이나 문학은 순수한 것이니, 둘은 분리되어야하는가. 안타깝게도, 최근 우리의 정치판은 그런 모양이다. 학문의 길을 걷던 사람이 정치판에 끼어들었다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반대로 정치를 하던 사람이 어정쩡하게 학문에 손대다가 학문이 꼬이는 모양새도 종종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가지 정치인 풀(pool) 중에서는, 활동가(액티비스트)와 함께 단연 학자 출신의 정치인이 다수를 차지해야한다고 본다. 논리성과 열의의 균형이 맞아야한다. 법을 지키고, 법의 논리를 가슴에 품되, 법에 얽매이지 않아야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교수님들이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대학 운동권에 많은 회의감을 안고 있는 사람이지만, 학생운동은 우리의 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며, 그들의 활동이 사회 곳곳의 변화를 선도하거나 그렇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추동력의 하나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건실한 학문의 장이자 활동의 장이 되어야하며, 학문의 길을 걷는 사람들과 그 길을 먼저 걸었던 사람들의 비호 하에서 많은 정치적 담론이 나와야하는 곳이다. 사회적 담론이 쏟아져 나와야하는 곳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 모두가 대학을 단순히 취업학원이나 비슷한 종류의 수단적 도구로 다룬다고 주장하려는 바는 아니다. 다만, 대학과 교수의 정치적 중립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대학의 모습은 정치적으로 회색이 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80년대처럼, 모두가 학생운동에 뛰어드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대학에서 정치적 담론이 나오는 것 자체에 대해 큰 부담감과 거부감, 나아가 혐오감을 밝히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운동이 대개 진보적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은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대학 내에서 보수적이고 건실한 정치담론이 일어나야하는 것이지, 정치담론 자체가 금기사항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학사회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가?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바는 아니니, 이는 다른 글을 통해서 논하기로 하자.

 

#4.

   어찌되었든, 그리하여 대학은 건실한 학문적, 정치적, 사회적 담론이 나올 수 있는 장이기 때문에, 나는 대학교수님들에게 정치적 순수를 요구하지 않는다. 학문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이다. 아니, 우리의 생활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이며, 정치는 곧 우리의 생활의 일부이다. 어쩔 수 없는 자리에 서있는 사람들, 예컨대 공무원이나 군인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것은 지당한 일으로 보이나, 그것을 학자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학자는 다만 자신의 수업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학생들에게 불합리한 평가나 교육을 진행하지만 않으면 된다. 학자 역시 기본적으로 사람이며, 사람은 정치적이며, 정치적인 존재는 자신의 정치성을 표출하는 법이다.

 

   언젠가 한 번,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운동권이 싫다. 나는 정치가 싫다. 나는 순수한 학문, 순수한 문학이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라며, 그들이 정치적인 담론을 자신의 작품이나 연구에 끌어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정치적 회색성을 대학에서는 어떻게 보면 가장 강력하게 드러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쩌면 '순수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당연한 자세일 수도 있다. 비단 순수문학 뿐만이 아니다. 여러 학과를 지나 심지어 사회학과나 정치외교학과와 같이, 그 자체로 정치와 사회를 공부해야하는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에게까지도 중립을 요구하려는 세상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결코 정당하지 않으며, 어떠한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학문과 문학은 모두 소중한 것이며, 어떠한 의미에서 고결한 것이다. 그러나, 고결한 것이 순수해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치 과정 속에서 학문은 사회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아나간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순수한 문학은 그 무엇보다 좋을 지도 모르지만, 문학이 현실로부터 동떨어져 존재한다면 공허한 존재로 남을 여지가 크다. 순수한 문학, 문학적 기법과 그 내용에만 치중하는 문학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문학이라는 하나의 매체, 작게는 장르적 발전에 있어서 완전히 순수한 문학은 중요한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작품으로만 가득찬 문학이라면, 그런 문학은 단순한 오락과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인가? 이는 그저 내가 문학을 공부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문학의 순수성에 대한 요구를 듣다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학문과 문학은 정치와 동떨어져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이들이 학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 속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학은 순수해질 수 없으며 순수해질 필요 또한 없다. 학교본부라는, 하나의 기관으로서 대학은 학내 구성원들의 다양한 정치적 의견과 여러가지 담론, 많은 이슈들에 있어서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하며, 여러 의견을 조율할 수 있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본부는 정치적으로 중립에 서야한다. 그러나 그 대학을 구성하는 우리는, 학자는, 중립이어야할 필요가 없다. 순수한 학자는 있을 수 있다. 학자가 순수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자 그 자체가 순수한 것은 아니다.

 

#5.

   이 글은 이번 학기에 내가 듣는 대학 교수님들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정치적 문제로 시끄러웠던 우리 학교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쓰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교수님들과는 별개로 학생들의 정치운동 과정에서 많은 논란을 겪었다. 학교에 몸을 담은지 이제 3년째이지만, 내가 아는 사건만 해도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정도다. 내가 입학하기 1년 전, 운동권 학생회가 가장 잘못된 방법으로 학생의 신뢰를 잃었다. 입학한 해에, 비권을 표명한 운동권이 들어섰고, 생활도서관이 자리를 잃었다. 정치적 순수가 그 이유였다. 그 학생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 '그대로 있으라'의 표본과도 같았다. 12년과 13년의 우리학교는, 운동권이나 비권의 한 쪽에 몸을 담고 있지 않은 사람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장 잘못된 방법으로 각자의 성향을 드러냈다. 나는 그 과정을 목도하면서, 전해들으면서, 대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 조용히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 취업에 시달리는 학생들, 학문의 길을 걷는 사람들,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와있게 되버린 대학원생들. 정신차리고 보니 강단에 서있는 교수 강사님들, 자신의 정치적 열의를 쏟아내는 누군가, 자신의 자리에서 무덤덤하게 이 모든 사태를 바라보는 교수, 강사님들 그리고 학부, 대학원생, 그리고 나아가 교직원과 학내에서 무언가 조금이라도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어느 순간부터,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목소리만이 대변된다. '비정치'의 과정 속에서 대학정치가 죽었다. 아니, "비정치를 부르짖는 동안, 대학 속의 정치는 죽었고, 대학은 그 무엇보다도 빨리 정치화되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렇다. 비정치의 과정에는 수많은 선택과 배제가 있었다. 비정치를 표방하면서, 그들은 정치를 개념지었다.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이 정치이자 비정치였으며, 그 자체로 생활이었던 그동안은, 비정치 속에서 "이것은 정치적이고 이것은 정치적이 아니다"라는 틀에 갇혔다. 그들의 비정치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그대로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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