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Prototype ~창은의 프래그먼츠~ 1권

 

 

0.

   이 블로그의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을, '덕질'의 뿌리에는 타입문이 있고 그 바탕에는 페이트 시리즈와 공의 경계가 있다... 라는 이야기는 이 블로그에서 꽤 자주 해온 이야기다. 사실 그 이후에 여러가지 파생작품들이 나온 것은 알고 있었는데, 딱히 접할 기회가 없었다가 이번에 프로토타입의 전일담이라고 할 수 있는 '창은의 프래그먼츠' 시리즈가 번역, 정발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두 권을 한꺼번에 사들였다.

 

   책의 장정만을 따지자면, 평가는 soso. 지금까지의 NT노벨 레이블과 전혀 다르지 않은 장정으로 출시되었다. 다만 판본 자체는 더욱 커졌고, 종이의 품질도 다른 NT노벨의 그것보다는 훨씬 좋다. 무엇보다 일러스트가 풀컬러. 권당 가격은 라이트노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꽤 비싼 가격으로 9,800원이다. 워낙 책값이 많이 올라버린 상태라서 9,800원도 소설 치고는 아주 비싸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두께나 라이트노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싼 가격은 아니다(물론 일본에서 발매된 가격에 비하면 비교적 저렴하게 나온 것은 맞다). 제본 형태는 기존의 라이트노벨과 비슷한 접착 제본으로, 쉽게 파본될 위험이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고급화된 라이트노벨이긴 한데, 어쨌거나 라이트노벨이라는 형태의 범주 안에 있는 녀석이다.

 

1.

   이번에도 나스 기노코가 직접 쓰지 않은 페이트 시리즈다. 나스 기노코는 게임의 시나리오에 주력하고 있다고 하는데(PSP용으로 발매되었던 FATE/EXTRA나 모바일 게임인 FATE/GRAND ORDER 등)... 그래서인지 페이트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여러 작품들은 나스가 아닌 다른 작가를 기용하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FATE/Zero에서는 니트로 플러스의 우로부치 겐이 그 악명을 떨쳤고, 본 작품 창은의 프래그먼츠는 사쿠라이 히카루가 맡았으며, 스트레인지 페이크 시리즈는 듀라라라!의 나리타 료우고가, 페이트/아포크리파는 히가시데 유이치로라는 작가가 각자 맡았다.

 

   여타의 소설과 달리 프로토타입은 말 그대로 페이트 시리즈의 원판(Prototype)이기 때문에 나스 기노코가 직접 맡았더라면 더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 작품은 원판 그 자체가 아닌 그 전일담이니, 뭐 사실 그 위치가 매우 특수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한편 풀컬러로 장식된 일러스트도 굉장히 미려해서, 타입문 시리즈의 일러스트로는 <마법사의 밤>만큼이나 매력적이다. 풀컬러 일러스트인데다 페이트/제로와는 달리 아낌없이 사용된 일러스트 덕분에 눈이 즐거운 소설이 되었다(물론 덤으로 밖에서 읽기는 그만큼 어려워졌다).

 

2.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마술협회(시계탑)의 영향권 밖, 극동의 땅, 일본. 그 극동의 땅의 중심지, 도쿄에서 '만능의 원망기'인 성배를 놓고 다투는 7인의 마스터와 7기의 서번트의 '전쟁 의식'이 개시된다. 의식의 이름은 '성배전쟁', 6인 6기가 쓰러지기 전까지 절대로 종결되지 않는, 극동의 마술사들의 총력전. 개 중에는 태어날 때부터 '근원'과 연결되어있었다는 천재, 사죠 마나카도 있었다. 마스터 계제 1순위이며, 동시에 서번트 계제 1순위인 '세이버(검사)'의 마스터. 전대미문의 최강의 조합은, 그러나 이미 보이지 않는 균열이 자라고 있었다―― 정의롭지만, 조국을 구제를 위해 누군가를 희생할 각오를 마친 세이버와, 그런 세이버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된 사죠 마나카는, 전대미문의 최강의 조합. 동시에 전대미문의 최악의 조합이었다.

 

3.

   사쿠라이 히카루라는 작가는 처음 들어보지만 여성적인 문체로 꽤 유명한 시나리오라이터라는 평이 많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전대미문의 최강의 조합인 덕에 비교적 편안하게 이야기를 진행할 것으로 보였지만, 이 쪽 세상도 결국은 페이트의 세상인 모양이다. 1권에서 시작된 비극은, 2권에 가서 꽃을 피운다. 2권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두더라도, 이미 1권 곳곳에서 세이버와 마나카의 관계 곳곳에는 비극적인 균열이 엿보인다. 거기에는 세이버, 진명 '아서 팬드래건'의 모순이 있고, 사죠 마나카의 '사회성 결여'가 있다.

 

   기존의 페이트 시리즈(페이트/스테이 나이트나 페이트/제로)에서의 세이버의 모습을 쏙 빼닮은 사죠 마나카는, 그러나 성격에 있어서는 완전히 상반된다. 객관적인 눈으로 본다면 그녀는 전형적인 싸이코패쓰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 누구 이상으로 붕괴되어있는 성격이다. 소설에서는 이런 성격이 마스터가 되기 전부터 전해 져내려온 것인지, 아니면 성배전쟁이 개시되면서 세이버의 마스터가 되고, 그에게 한 눈에 반하면서 시작된 것인지에 대해서 추측해볼 수 있을만한 묘사는 거의 없다. 그렇지만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야기가 진해되고 있는 시점에 있어서 그녀의 모습은 결코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사죠 마나카의 모습을 그리는 데 주력한다. 소설은 기존의 페이트 시리즈와는 달리 전투씬을 최대한 줄이고, 그 자리에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채워넣었다. 사죠 마나카는 주인공이지만, 이야기는 그녀의 관점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그녀의 비정상적이고, 잔인하며, 완전히 삐뚤어진 모습은 철저하게 주변인에 의해 관찰되는 형태로 그려진다. 이번 권에서는 그녀의 여동생, 사죠 아야카가 그 역할을 맡았다. 본인의 심리 묘사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주변인들의 묘사는 그녀의 심리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게 만들고, 비정상적인 그녀의 모습을 어떠한 합리화도 없이 있는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그녀가 '일반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있다는 사실을 더욱 명백히 드러낸다.

 

   이렇듯, 프로토타입의 주인공이 되는 사죠 아야카와 달리, 사죠 마나카는 기존의 페이트 시리즈의 주인공들과는 완전히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페이트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가지는 몇 가지 특징은, 일단 그들이 말하는 '신비'에서 최약자의 위치에 서있는, 준 일반인 수준의 인물들이었으며, 그들 스스로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정의롭고 올바른 것을 추구했으며, 그 결함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직면하고 그 결함을 고쳐나가면서 자신의 이상을 모종의 형태로 이룬다는 점이다. 거창한 '정의의 구현'을 내세웠던 페이트 시리즈의 에미야 시로가 대표적이다. 반면 사죠 마나카는 그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타고난 재능, 정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스스로 결함이 있어서 그 결함을 고쳐나간다고 하기 보다는 자신 그 자체가 결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녀가 본편인 프로토타입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고려하면, 그녀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일 뿐이고 주인공이라고느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4.

   형식 면에 있어서, 이 소설은 단행본을 염두에 놓고 쓰여진 소설이 아니다. 애초에 잡지에 연재되기 위해 쓰여졌기 때문에, 묘사가 미묘하게 절제되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이러한 특성은 굉장히 모순적인데, 왜냐하면 사쿠라이 히카루의 문체가 나스의 그것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보이는 수많은 쉼표와 '――'의 난무, 그리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단락을 나누어놓는 공백들은 공의경계 때의 나스 기노코의 문체와 비슷하다. 그 당시의 나스보다는 묘사에 더 정성을 들였고, 덕분에 읽고 나서도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는 것은 아니지만, 특유의 만연체와 과감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선을 훌쩍 넘은 묘사 생략, 그리고 무엇보다 간단히 묘사할 수 있는 것을 길게 늘여놓는 표현 등은 읽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나스 기노코의 문체는 굉장히 독특하고 개성적이지만, 좋은 문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사쿠라이 히카루가 '나스 기노코의 그것에서 차용한' 문체적 특징들은 정작 나스 본인의 작품에서는 점점 더 사라지고 다듬어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와 마법사의 밤에서 사용된 표현들을 비교해보면, 비교적 간결해지고 부드러워진 문장이 놀라울 정도다. 물론 이러한 문체는 페이트 시리즈의 일부분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이고, 페이트 제로에서도 일부를 차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우로부치 겐이 보여준 페이트 제로에서의 그것은 자신의 특유의 문체와 나스의 그것을 적당히 버무려놓아서인지 훨씬 읽기 편했던 반면에, 사쿠라이 히카루의 그것은 나스 특유의 피곤함이 살아있다.

 

   이러한 부분은 잡지연재라는 특징과 맞물리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는데, 분량의 제한 속에서 묘사를 생략하고, 그것을 넘어서 가운데 이야기를 통째로 생략하는 형태의 이야기 진행을 계속하다보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이야기의 전개는 빨라지고, 독자의 이해도는 그에 반비례해서 점점 더 떨어진다. 한 챕터(작품 속에서는 챕터 대신 '액트(ACT)'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와 챕터 사이의 이야기는 독자가 알아서 유추하고 끼워넣어야한다. 그렇게 끼워넣고 나서도 허전한, 그런 이야기의 전개가 1권을 넘어서 2권까지 계속된다. 작가의 한계라기 보다는 잡지연재라는 양식의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다보니 이야기의 큰 흐름 자체도, 한 이야기 안에서의 묘사도 모두 술술 읽힌다고 부를 수 없다. 1권보다는 2권이 낫지만, 사실 크게 다르지는 않다. 어쨌든 페이트 시리즈의 팬이 아니라면 그다지 읽을 일이 없는 책이기도 하지만, 읽는다면 나스 특유의 문체에 익숙하지 않아 꽤나 고생할 것 같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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