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국기 0. 마성의 아이 / 엘릭시르판

 

 

0.

   외전에 해당하는 마성의 아이를 다 읽었다. 굳이 0권이라고 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마도 엘릭시르 입장에서는 십이국기 시리즈에는 넣으면서도 원판의 넘버링을 해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같은데(아니면 원판도 마성의 아이가 0권인가?) 마성의 아이에 있는 내용을 이해하려면 2권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의 내용을 알아야한다. 저자가 십이국기 시리즈와는 별개의 소설로 봐달라고 했다는 말이 나무위키에 있던데 그렇게 보는 것은 조금 무리다. 2권의 내용을 모르고 읽었다면, 내가 '마성의 아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을지 자신할 수 없는 것이 그 이유다. 마성의 아이는 어디까지나 십이국기의 한 이야기다. 사실 외전이라기 보다는 그냥 에피소드 하나를 차지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아마 배경이 '이 쪽 세상'이다보니 외전으로 넘버링되었으리라.

 

1.

   이번 이야기는 2부,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의 주인공이었던 다이키가 다시 한 번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2권에서는 그려지지 않지만 1권에서는 짤막하게나마 묘사가 있는데, 내용은 대극국의 태왕 교소는 반란을 진압한다고 출정하였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 와중에 대국의 기린 다이키도 식에 휘말려 실종되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그 식에 휘말린 다이키가 다시 한 번 태과가 되어 이 쪽 세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실 맨 앞부분이 (정확히 비교해보지는 않았지만) 2부의 프롤로그와 동일한 내용이기 때문에, 2권을 먼저 읽은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가 다이키의 이야기라는 것을 쉽사리 추측해볼 수 있다. 곳곳에서 나오는 산시와 고란에 대한 묘사에서도, 그 정체를 쉽게 간파할 수 있다.

 

   마성의 아이라는 제목은, 다카사토(다이키의 태과 때의 이름)의 주변에 끊임없이 저주와 비극적인 사태가 반복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가미카쿠시(실종?)를 당했다가 돌아온 그의 주변에서는, 그에게 조금이라도 위해를 가하면(그것이 그를 위한 것이든 아니든지 간에) 보복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직접 복수하는 것은 아니다. 기린은 피, 흉사를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존재.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가 절복시킨 '고란'과 산시가 일으키는 일들이다. 그들은 소설속의 묘사를 빌리건대 '충심'으로 다카사토를 지키고자 하지만, 대의만 있을 뿐 물불안가리는 보복 덕분에 다카사토는 오히려 궁지에 몰리게 될 뿐이다.

 

2.

   이번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일단 십이국기의 연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이키의 공백기 동안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는가하는 이야기다. 사실 2권에서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니만큼 다이키에 대한 독자의 관심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야기의 중심은 물론 경동왕 나카지마 요코이지만, 그녀에게만 주목이 쏠리지 않는 것이 또 십이국기의 매력 중 하나다. 마성의 아이는, 다이키가 식에 휘말려 사라진 동안, 대극국이 곤경에 처하고 무너져가는 동안 그는 왜 돌아오지 못했고, 어디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가에 관한 설명이다.

 

   반면에 저자가 말했듯이 기존의 십이국기와는 별개의 이야기로 생각한다면, 사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카사토가 아닌 히로세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히로세는 대학을 마무리해갈 무렵까지도 중2병을 제대로 떨쳐내지 못한 인물이다. 고등학교에서 겉돌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히로세가 다카사토를 만나고, 자신이 특별하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자신의 고향, 자신의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다. 다만, 그 깨닫는 과정이 조금은 과격할 뿐이다. '진짜로' 이 곳이 자신의 고향, 자신의 세상이 아닌 인물, 정말로 특별한 존재인 다카사토를 통해서 그는 자신의 한계, 자신의 진실, 자신의 비겁합을 마주하게 된다.

 

   소설 내내 그는 교생으로서, 선생으로서, 그리고 같은 동포로서 다카사토에게 희망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그를 외부의 풍파로부터 막으려고 노력하고, 그의 실체를 간파하려고 노력한다. 잘못된 오해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자신의 우를 그도 범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를 올바른 항향으로 이끌어가고자 노력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러나, 그의 마음, 그의 진심은 마지막 절규를 통해 압축적으로 표현된다.

 

"왜, 너만."

 

   그는 이야기하는 내내 자신이 다카사토의 유일한 이해자라고 말하지만, 말미에 이르러 그것은 곧 다카사토가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였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가 다카사토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동포를 만나는 과정에서의 자신의 자기만족에 불과할 뿐임도. 결국 그는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싶었고, 이곳이 자신의 고향이 아닌게 아니라 자신의 고향이 아니었음을 바랐을 뿐이었다. 이 소설은 다이키라는, 어쩌면 독자에게 익숙할지도 모를 인물을 내세우지만 그 과정에서 정말로 성장하고, 정말로 변화하는 인물은 사실은 다카사토(다이키)가 아닌 서술자 히로세다. 물론, 그 결말이 '실종'이라는 것은 씁쓸한 일이지만.

 

3.

   나는 이미 3부까지를 읽고 나서 마성의 아이를 읽었다. 그렇다면, 혹시 이 이야기를 2부를 모르고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 소설은 굉장히 괴기스러운 소설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어나더나 메멘토모리를 읽으면서 느꼈던 느낌을 다시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사실은 애초에 십이국기의 다른 권들과 이 이야기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급박하고 진지하지만 항상 어느 정도 평온함을 유지한 채로 이야기가 흘러갔던 본편과 달리, 이 작품은 독자나 등장인물들에게 조금의 쉴 틈도 주지 않고 정신없이 몰아붙인다. 보복 과정을 미리 간파하고 있지 못한다면 소설의 진행과정은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일이 일어나는 호러물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마성의 아이를 별개의 소설로 봐달라는 저자의 말이 일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이 소설은 정말로, 따로 봐도 아무런 손색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그렇게 읽는 재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카사토, 다이키의 뒷배경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읽는다면 이 소설의 어디에서도 호러의 느낌은 느낄 수 없다. 왜냐면 그 호러의 주체인 산시나 고란이 다이키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함께했는지를, 다른 그 누구보다 우리가 더 잘 알기 때문이다.

 

   다음권에 이르면 다시 이야기의 주인공은 경동왕 나카지마 요코로 넘어간다. 인터넷의 평을 찾아보니, 마성의 아이에서 돌아간 다이키가 다시 교소를 만나 대극국을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지는 아직도 이야기된 바 없는 모양이다. 경동왕의 이야기도 기대되고, 연왕과 엔키의 이야기도 기대되지만, 이렇게 긴 이야기를 들어버린 이상 우리는 다이키와 그의 왕, 태왕 교소의 이야기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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