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국기 3. 동의 해신 서의 창해 / 엘릭시르판

 

 

0.

   요즘은 책이 잘 읽히지 않는다. 사실 책이 잘 읽히지 않게 된건 오래된 일이고, 그저 아직까지도 잘 읽히지 않는다는 거다.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읽으려고 사놓고 쌓아둔 책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도서관에 들러 산더미같이 책을 빌려온다. 개중 한 두권이나 읽고 반납하고, 읽으려고 쌓아둔 책들은 손대지 않는다. 그런 패턴의 반복. 그래도 십이국기는 비교적 잘 읽히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습관이 완전히 없어져버린 탓에 책을 잡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잡으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1.

   앞선 두 권이 나를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었던 탓에 더 기대했던 3부다. 1부는 경국의 기린 게이키와 경왕 나카지마 요코를 다뤘고, 2부는 대국의 기린 다이키와 태왕 교소를 다뤘다면, 이번엔 안국의 기린 엔키와 연왕 쇼류를 다룬다. 사실 1부에서 어찌됐든 주인공인 요코를 도와줬던 연왕이기 때문에 더 큰 기대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1부와 2부가 각각 경왕과 태왕의 즉위 과정을 그렸다고 한다면, 3부에서는 드문 드문 즉위까지의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중심은 이미 왕위에 오른 연왕과 엔키가 내란을 평정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2부와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기린인 엔키다. 엔키는 옛날, 요마의 아이였던 소년을 만난다. 그 소년에게 '고야(更夜)'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재회를 기약한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엔키를 찾아온 고야와 재회하게 된 엔키는, 그대로 고야에게 납치당해 반란을 준비하고 있던 원주(안국의 지방 중 하나)의 아쓰유에게 데려가진다.

 

   한편 안국에서는 기린이 납치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병력을 끌어모으는 한편, 연왕인 쇼류는 몇 가지 지시를 남기고는 원주사(원주의 지방군)에 숨어드는데..

 

2.

   이번 이야기에 유난히 자주 나오는 단어는 '왕'이다. 의미적으로만 따와서 다르게 표현하자면, "선군이란 무엇일까?"하는 이야기. 앞선 1부 서평에서 저자는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그다지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전히 현대 정치의 의미에서 보면 그 말은 맞다. 십이국기는 여전히 '이상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고, 그 과정에서 굉장히 독특한 봉건주의 정치체계를 갖춘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선군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역사 속에서, 좋은 의미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후세에 이름을 남긴 왕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고, 냉정하게 정치체계를 가져간 왕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자비의 정치, 조금 구닥다리적인 표현을 쓰자면 '애민사상'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려간 왕들이다. 그 둘이 공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십이국기의 세계에서는, 앞선 기능을 왕이, 뒤의 기능을 기린이 도맡는다. 그러나 작품에서 아쓰유의 말대로, 그렇게 천의에 따라 기린이 왕에 가장 적합한 이를 발탁해내고, 왕과 기린이 왕정에서의 중요한 부분을 나누어 가져감에도 불구하고, 폭군은 나타난다. 3부보다 아주 조금 앞서있던 안국의 효왕, 그리고 1부에서 요코의 목숨을 노리는 교국의 각왕이 그렇다.

 

   작품 속에서, 엔키는 왕의 존재 의의 자체를 부정한다. 왕은 결국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백성은 왕이 없어도 되지만, 왕은 백성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왕은 국민의 고혈을 짜내고, 국민에게 불합리한 정치체계를 강요한다. 그러므로 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낫다. 엔키는 그렇게 생각하고, 왕 자체를 발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봉래에 돌아간 그는, 쇼류를 만나자마자 그가 안국의 왕임을 깨닫는다. 안국을 철저하게 망가트릴 왕이라는 사실을.

 

   그래서일까. 소설 속의 연왕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선군의 모습은 아니다. 지략가이며, 전략가이고, 정치가인 것은 맞다. 그러나 정무에 열심히인 선군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조의에는 한 달에 다섯 번도 들어오지 않고, 매일같이 밖으로 나돈다. 진지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부의 묘사를 보건대 연왕은 500년간 엔키를 실도에 빠지지 않게 하면서 그 자리를 지켜왔고, 안국을 풍요로운 나라로 바꾸어 놓았다. 완전히 폐허가 되버린 나라에서 말이다.

 

"내 목이라면 주마. 목이 떨어지는 정도가 별것인가. 백성은 내 몸이다. 백성을 죽게 함은 몸을 도려내는 것이다. 목을 잃는 것보다 그쪽이 훨씬 아프지."

 

   소설 속, 연왕 쇼류의 말이다. 아마 이 대사가 하는 역할은 연왕이 겉으로는 올바른 왕이 아닌 것처럼 보여도, 실은 백성을 항상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게다. 결과론적으로 그는 안국을 풍요롭게 한, 자유분방한 성격이지만 어쨌든 '선군'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엔키도 인정하듯이 원주의 반란은 쇼류가 스스로 여지를 준 것이 맞고, 정무에 진지하게 나서지 않는 그의 모습은 바람직한 왕의 모습은 아닐게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로서, 캐릭터로서, 한 사람으로서의 쇼류는 더없이 호감이 가는 인물이지만, 역시 왕의 위치에는 걸맞지 않는 인물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삐딱선을 타지 말고, 다시 보자. 어쨌든 십이국기는 현실정치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소설이 아니다. 연왕의 성공은 그 세계에서, 그 체계에 맞춰 태어난 올바른 왕이란 소리일 것이다.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그 시대에는 독재자가 필요했다, 그 시대에는 폭군이 필요했다, 그 시대에는 절대왕권의 확립이 필요했다. 그 주장들 자체가 옳은 소리인가는 차치하더라도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다. 그것도 일종의 천의였을 지도 모른다. 십이국기의 세계 속에서, 그것은 기린이라는 조금더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개념으로 나타난다. 엔키는 안국의 기린. 그는 안국의 민의를 대표하며, 동시에 천제의 천의를 대표한다. 십이국기에서 거듭해서 언급되는 왕기, 천계, 천의는 한 마디로 '시대정신의 구현'이다.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연왕 쇼류는 안국의 시대정신이 소망한 왕의 모습일 것이다.

 

3.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십이국기는 현실이 아니다. 십이국기는 매우 매력적이고,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을 여러가지 장치를 통해 만들어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십이국기가 보여주는 이상정치의 한계다. 십이국기는 굉장히 독특한 봉건주의 사회다. 왕은 인간에 의해 뽑히지 않고, 민의와 천의를 대신하여 기린이라는 생물이 발탁한다. 발탁한 후에는 재상의 자리에서 그를 보좌한다. 폭정을 일삼다가는 기린이 실도라는 병에 걸리고, 기린이 죽음과 동시에 왕도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나면 새로운 기린이 태어나고, 새로운 왕이 발탁된다. 왕은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역량 뿐만이 아니라, 한 나라를 관리하는 선인(仙人)으로서 나라의 음양을 조절한다. 즉, 아무리 무능한 왕이라도 왕이 있음과 없음에는 그만한 차이가 생긴다. 이것은 분명히 현실 정치에 대입할 수 없는 문제다.

 

   결정적인 차이는 그 구조를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왕은 실도에 빠진 기린이 죽기 전까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절대불가침의 성역이다. 왕이 없어져도 마찬가지다. 왕이 죽고, 위왕이 섰던 경국. 왕과 기린이 모두 사라져 혼란에 빠진 대국. 그런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체계는 절대 들어설 수 없다. 십이국기의 세계속에서 정치체계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천제, 천의가 그러한 정치체계를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인의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책 속에서 주사를 모아 폭정을 일삼는 왕을 퇴진시킬 수 있다는 언급이 나오지만, 그것은 그다지 현실성이 없어보인다. 어디까지나 선적(仙積, 선인의 명부로 선적에 이름이 오르면 불로장생을 누린다)을 관리하는 것은 왕이다. 더군다나 본인 자체가 가장 높은 선인의 하나로 쉬이 죽지도 않는다. 본인이 희망하거나 기린이 실도로 죽지 않는한 새로운 왕은 옹립되지 않는다.

 

   백보 양보하여 주사들이 왕을 물리쳤더라도, 왕은 바로 옹립되지 않는다. 그들이 뽑은 왕은 기린이 인정하지 않는한 위왕(가짜 왕)이다. 기린이 다음 왕을 뽑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왕은 단순히 통치자가 아니다. 음양의 조화를 관장한다는 왕의 역할은, 공석일 때 국가에 대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다. 과연 인의로 그 왕을 나라에서 내몰 수 있을 것인가.

 

4.

   어디까지나 이런 이야기도 설정놀음이다. 십이국기의 방대하고 꼼꼼한 세계관은 이런 재미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야기의 세 축은 원주 아쓰유의 반란, 고야와 엔키의 재회, 연왕의 등극이다. 세 이야기가 계속 교차한다. 아쓰유는 위선과 기만, 조금 더 나아가자면 자신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인지부조화로 가득한 왕이다. 겉모습은 비교적 전통적인 통치자의 모습이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유폐하고 그 대역을 세우며, 필요없어진 대역을 고문하고 가둔다. 자신의 신하들을 아끼는 듯 하지만 그들을 도구처럼 이용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왕의 등극 과정과 뚜렷하게 대조되는 모습을 보인다. 연왕 쇼류는 즉위 전, 봉래에서 자신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것을 각오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 심복이 반역을 유도했다느니 하면서 몰아세우고, 자신을 믿고 아끼는 신하를 도구로 이용한 아쓰유와는 다르게 말이다.

 

   봉래에서부터 그는 전통적인 통치자상은 아니다. 매일같이 마을로 내려가 유흥을 즐기던 도련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련님'이라 불리는 자의 무게, 책임을 알았다. 옛날에 모 드라마의 부제로도 달리지 않았던가. "왕관을 쓰려는자, 그 무게를 견뎌라." 그는 왕관을 쓰기를 원치는 않았으되, 자신의 책임은 잘 알았다. 그리고 봉래에서 그는 실패했다. 그가 엔키에게 나라를 원한다고 했을 때, 그는 덧붙인다. 일개 땅이 아닌, 일국(一國)이어야만 한다고. 어쩌면 쇼류에게 연왕으로서의 생활은 봉래에서의 실패를 극복해나가고 보상받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건 연국의 태보, 기린 엔키도 마찬가지다. 500년을 넘게 산 엔키는 1부와 2부에서 어엿한 기린의 모습이었지만, 태어난지 얼마 안된 3부에서는 2부의 다이키처럼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끊임없이 성장한다.

 

5.

   어쩌다보니 1부(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는 조은세상판, 2부와 3부는 엘릭시르의 완전판으로 보게 됐다. 또 어쩌다보니 외전이고, 엘릭시르에서 '0권'이라고 붙인 마성의 아이를 제일 뒤로 미루게 됐다. 다음은 마성의 아이다. 십이국기는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왜인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수많은 책들에, 아직도 이렇게 훌륭한 작품들이 많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이미지 맵

    서평/소설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