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형 읽기와 쓰기

1.

   우리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유명했던) 수업을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중핵필수의 꽃, <읽기와 쓰기>(지금은 계열별 글쓰기와 함께 과목 이름이 바뀌었다고 들었다)일 것이다. 옛날 어느 글에선가 블로그에서도 한 번 밝힌 적이 있지만 나는 남미정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다. 중핵필수이고 1학년 첫학기에 듣게 되는 수업인만큼 수업 분위기는 그다지 학구여렝 불타는 쪽은 아니었다. 게다가 영어1은 튕겼었지만 읽쓰는 우리 섹션에 할당된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1학기생 특유의 소란스러움과 시끌거림이 있는 수업이었고 교수님도 그런 우리를 굳이 '빡세게' 몰아붙일 생각이신 것 같지도 않았다. 


   읽기와 쓰기라는 과목은 우리 학교의 전통이자 자랑, 좀 더 나아가면 '아이덴티티'라고 말할 수 있을 수업이다. 소위 말하는 '독후감' 수업이다.


과거 학교에 있었다고 하는 독후감 제출함(??). 사진 출처 : 엔하위키


   사실 논술은 쓸 때마다 고배를 마셨던 나이지만 기본적으로 글쓰는건 좋아하는 탓에 그다지 어려웠던 수업도 아니었다. 물론 얻어가는게 많다고 하기는 어려운 수업이지만(이건 수업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읽쓰라는 과목 자체의 한계다).. 독후감을 쓴다는게(사실 엄밀히 말해서는 독후감이라고 부를만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고 철저하게 텍스트 분석에 초점을 맞춘 글쓰기) 귀찮기도 했지만 재밌었다. 애초에 수업 자체도 아이들이 얼마나 잘 읽고 잘 쓰느냐? 에 초점을 맞춘게 아니고 학부생으로서의 읽고 쓰는 능력을 배양하는데 목적을 둔 수업이라(물론 짧은 한 학기 수업의 실효성은 뒤로 미뤄둬야겠지만)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수업이었다.


2.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건 이 수업에서 인상깊게 들었던 말이 있다. 여러분과 글쓰기는 멀어진게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당장 트위터에 140자 안팎의 글을 쓰든, 페이스북에 적당한 길이의 글을 쓰든, 여러분은 항상 글쓰기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사람들은 '책'과 멀어짐과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더 '글'과 가까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역설적이게도 멀티미디어의 발달 속에서 글은 오히려 그 자리를 확고하게 했다. 자리를 잃은 것은 중장문 뿐이고, 단문은 문자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21세기형(정확히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최적화된) 읽기와 쓰기가 나타났다. 소위 말하는 F자형 읽기(단락의 주제문만 읽고 나머지는 훑어보는 식의 읽기)가 등장하고 그에 맞춘 F자형 쓰기(단락에 온 힘을 다하는)가 자리잡은 것이다.




   F자형 읽기는 위와 같은 방식의 읽기를 의마한다. 큰 흐름의 화살표를 따라서, 웹페이지에서 강조되있거나 각 단락의 제목 역할을 하는 부분은 주의깊게 읽고, 곧 흥미롭지 못할 경우 다시 큰 뿌리로 돌아와서 계속해서 페이지의 아래를 향하는 형태의 독서다. 얄팍한 읽기, 주의력 없는 읽기 패턴같지만 현대 시대에서 '정보의 취사선택'을 위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형태다. 이에 따라 많은 회사들이 이 패턴을 따르는데, 예컨대 단락마다 부제가 붙은 언론사의 기사나 위 이미지와 같은 검색엔진의 결과창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패턴에서 우리는 현대 시대의 독서가 '짧고 강렬하며, 이리저리 쉽게 움직이는' 형태를 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좀 그럴듯하게 말하자면 '역동적인' 읽기이고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산만한' 읽기다. 고전적인 독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F자형에 맞춘 글쓰기는 '현실과 영합한' 종류의 것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해보면 내 블로그는 얼마나 시대에 뒤쳐졌는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내 글쓰기, 내 블로그는 절대 저런 패턴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저런 패턴으로 바꾸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 내 블로그는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적인 블로그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 조차도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 게시된 긴 장문을 읽는데 익숙치 못하다는 점을 부끄럽게 고백해본다.


3.

   나 역시도 위와 같은 패턴의 독서를 하고 있겠으나, 이런 형태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나는 어디까지나 고전적인 독서가(가 되고 싶)다. 그러나 위와 같은 패턴의 독서도 이제는 하나의 흐름이다. 블로그가 죽고 단문의 SNS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된 데에도 그러한 이유가 있을 터이다. 결정적으로 독서의 매체가 종이에서 전자기기 화면(LCD나 LED)으로 넘어갔다. 이런 새로운 독서 수단들은 e-잉크라는 예외를 제외하면 대개 장문의 글을 읽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수요에 맞춰 글쓰기의 형태가 변하는 것을 무어라고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아마도 내 블로그는 계속 이러한 형태의 글쓰기를 지향할 것이고 나 뿐만 아니라 이런 글은 죽지 않을 것이다. 어떤 시대에도 고전적인 형태의 글을 사랑하는 독서가들은 존재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읽었던 유혹하는 책읽기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현대의 글읽기가 글을 정보 취득의 수단으로 보는 반면에 고전적인 독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현대에 장문은 단문, 그림, 사진, 동영상 등 여러 경쟁자를 맞아 죽을 위기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은 어디까지나 글 자체로서의 매력이 있고, 그 글에 빠지는 것은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정보를 얻기 위해 그림을 보는 것이 그림 감상의 유일한 이유가 나이듯이, 글 자체도 하나의 예술이다. 내가 아직도 글에 빠져, 그것도 길고도 긴 중장문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이유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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