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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에쎄이

유혹하는 책 읽기

소민(素旼) 2015.01.12 22:25



0.

    저자, 앨런 제이콥스. 제목, 유혹하는 책 읽기.


1.

   스티븐 킹의 저서 <유혹하는 글쓰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책 제목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면 특징 중 하나는 책 읽기라는 행위에 굉장히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내가 킨들에 관한 글을 쓰면서 밝혔듯이, 독서가들에게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일종의 의식 행위와 비슷한 종류의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 수많은 글과 독서가들은 디지털, 멀티미디어의 홍수에 위협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일종의 '의식적' 행위이자 누군가의 말을 빌려 '일종의 지식노동'이라고 일컬어지는 독서와 달리 시청각적 자극을 바탕으로 하는 멀티미디어는 훨씬 가볍고, 피로하지 않은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구를 집약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인용하는 니콜라스 카의 인용구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누군가가 또는 어떤 것이 서투른 솜씨로 내 머릿속의 신경회로를 재배치하고, 기억을 재조정하는듯한 불안을 느껴왔다. 내가 인지하는 한, 내 지성은 순조롭게 작동하지 않고 변화를 겪고 있다. 사고하는 방식도 예전 같지 않다. 독서할 때 이런 증상을 가장 심각하게 느낀다. 예전에는 책이나 어느 정도 긴 논문에 몰두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내 지성은 이야기의 서술이나 논쟁의 전환에 빠져들거나, 길게 뻗은 산문의 길을 따라 몇 시간씩 거닐고는 했다. 그러나 이제는 좀처럼 그런 경우가 드물다. 이제 내 집중력은 책 두세 쪽만 넘어가면 표류하기 시작한다. 안절부절못하고 이야기의 줄거리도 따라가지 못하고 다른 할 일을 찾기 시작한다. 변덕스러운 내 지성을 책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항상 억지로 노력한다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빠져들던 독서가 이제는 일종의 몸부림이 되었다.


   이러한 니콜라스 카의 모습은 나의 모습과도 굉장히 비슷하다. 내가 가장 독서를 열심히 했을 때는 언제였는가하면 역시 고등학생 때다. 한창 글을 읽고 쓰는데 재미를 붙였던 때다. 그 때는 내가 글을 가지고 놀았다. 읽고 싶은 글을 읽었고 쓰고 싶은 글을 썼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카의 말처럼 일종의 '몸부림이 되었다'. 읽어야할 것 같아서 읽고 써야할 것 같아서 쓰는 것 같은 느낌. 이 책에서 말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독서'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2.

   저자는 책을 읽는 재미를 한 때는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런 재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 재미를 다시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지금에 와서 내가 이 책을 읽은 뒤 저런 현상에서 완전히 벗어났는가하면 그렇지가 않다. 사실은 조금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도 결국은 그런 의무감 속에 읽었다. 나는 굉장히 저급하고도 단순한 독자라서,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은 쉽사리 잘 놓지 않는다. 이 책도 중간 중간에 지루한 장면을 곳곳에서 마주치게 됐고 그럴 때마다 이 책을 계속 읽어야하나 하는 회의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건대 이 책이 독성의 재미를 찾고 독서의 즐거움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거기서 얻은 즐거움의 상당수를 이 책 자체를 읽으면서 잃어버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책의 내용은 생각만큼 가볍지 않다(개인적으로는 다독가들의 글에 자주 나타나는 많은 인용이 이러한 부분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적어도 독서가를 표명하고, 또는 책을 읽는 사람임을 표명하고 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에서 내게 던진 말 중 가슴에 가장 깊이 남았던 말은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도 그렇다. 한 번 읽은 책은 어지간하면 다시 읽지 않는다. 이 독서습관에 대해서 그다지 나쁘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다음 책을 향해 묵묵히 나아갔을 뿐이다. 이러한 독서 습관의 뿌리에는 블로그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같은 책을 계속 읽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한 번 읽은 책이라도 다시 떠들어봐야겠다. 사실 독서를 놓은 기간 동안 책을 읽는 속도도 굉장히 많이 느려졌고 그 이상으로 텍스트를 처리하는 능력이 곤두박질쳤다. 한마디로 책 한 권을 떼는 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옛날에 내가 도서관을 가는 이유는 거기에 수많은 책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돈으로 내가 책을 읽는 속도를 따라갈 만큼의 책을 살 수 없어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소득은 늘어났고 책을 읽는 페이스는 느려졌다. 그렇다면 이제는 조금 사서 봐도 상관없지 않나 싶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방은 좁으므로, 그 타협점에서 선택한 것이 바로 전자책이었던 것이다.


3.

   또 다른 반성의 요점 중 하나는 속독에 대한 반성이었다. 나는 그다지 속독이라고 부를 만큼의 속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특히나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다보니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대출 기한의 제약을 받았고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에게 속독을 강요하곤 했다. 이 속독이라는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텐데(한 종류는 그저 텍스트를 처리하는 속도가 빠른 것 뿐이고, 다른 하나는 훑어보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로 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독서 습관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 독서습관을 한 번쯤은 뜯어 고쳐야겠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속독과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지 않는 습관 모두 블로그에 기인한 부분이 크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의 독서의 이유 중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 서평을 쓰는 재미..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나는 이제와서 블로그를 때려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단순한 이야기인데 결국 이 것이 '질보단 양'의 독서인지, 아니면 '양보단 질'의 독서인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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