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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의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조국 뒤에는 진보라는 타이틀이 항상 따라다닌다. 물론 조국이 그만큼 실천적인 진보인인 것은 분명하다. 나 또한 그런 조국을 좋아했었고. 그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거기에서 '폴리페서'라는 표현이 쓰였고!). 그러나 그렇게 많은 이들이 부르짖던, 찾았던 '행동하는 지식인', 그게 바로 조국이었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그가 이름을 떨친 것은 오연호 씨와 함께 한 <진보집권플랜>부터였을 것이고, 나 역시도 조국이라는 사람을 거기에서 마주쳤다.


앞에서 조국을 좋아했다고 말했지만, 생각해보건대 조국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다지 잘 아느 바는 없다. 어떻게 보면 막연하게 좋아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별반 다를 바는 없지만, 나의 사상과 생각과 믿음과... 그런 것들은 굉장히 위태위태한 상태로 정립되어있는 것이다. 논리가 튼튼하고 치밀한 것도 아니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과 같다. 그 위에, 나는 아직 '믿고 있을 뿐'이라는 문제가 있다. 앎에 기반한 믿음이 아니라, 그냥 감정적인 선호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에서 그런 감성을 중요하게 여기라고 하였건만, 아직도 나는 이성에 대한 조금의 사랑을 버릴 수는 없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무거운 이야기를 떠나서 알고 믿는 것과 모르고 믿는 것 중 어떤게 더 좋을 것이냐 하는 문제는 굳이 물을 것도 없다. 


조국이라는 사람도 그렇다. 막연히 '진보' 계열 인물들을 좋아할 뿐, 아직도 그 사람들의 정확한 생각이 무엇인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서 조국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더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글쎄 과연 그게 얼마나 될런지.


아마 이 책을 사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일 것 같다. 책 제목대로 왜 조국이 법을 공부했는가가 궁금해서 산 사람과, 조국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서 산 사람. 나는 두 가지가 뒤섞인 경우이긴 했으되 우선 순위는 전자였다. 왜 법을 공부했는가가 궁금했고, 그게 조국이라서 더 궁금했다. 그러나 먼저 이야기하건대, 이 책은 사실 <왜 나는 법을 공부했는가>라는 타이틀에 그다지 걸맞는 책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이 책의 이름을 붙이자면 <조국, 그리고 공부> 정도가 아닐까. 


어쩌면 그만큼 폭넓게, 법 공부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좋지만 그렇다고 해도 법에 대한 이야기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적다. 그런 점은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조국이라는 사람이 법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법학도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는(그리고 실무 법조인이 아닌 법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도) 분명히 알 수 있다.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사실은 그가 왜 법을 공부했는가는 그의 인생을 꿰뚫는 문제일 것이고, 그러다보니 왜 내가 법을 공부했는가를 이야기하면서 그의 인생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의 타이틀은 휘황찬란하기만 하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만 26세에 서울대 법대 교수가 됐다. 지금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하고 있고, 그와 동시에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주요한 '장외인사'로 매번 언급되기까지 한다. 그런 그의 인생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이 책에서 느껴지는 조국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다. 실천자로서의 조국, 그리고 공부하는 조국. 그리고 그 두가지 모습은 막바지에 이르러 하나가 된다. 혼자만의 공부가 아니었기에 즐거웠다고. 모두를 위한 공부였다고. 결국 실천자로서 끊임없이 공부했던 셈이다. 실제로 뛰어난 학자들의 책을 살필 때마다 느낀 거지만, 이 책에서도 조국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왔고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왔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공부에 대한 의욕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고.


...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렇지 않았다. 공부에 대한 동경은 있었다. 학자의 길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지금, 내 마음대로 공부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서야 진심으로 공부에 한 몸 투신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몸이 되면, 한 세 달 쯤 도서관에 틀어박혀 진짜 '공부라는 것'을 해보자고. 이 책의 저자인 조국은 그렇게 책, 글, 공부에 둘러싸이는 것을 경계하라고 했으나 나는 일단 그 단계에 이르지도 못했으니 경계고 뭐고를 따질 문제도 아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의 엄청난 독서량에 찬사를 보내면서, 정말 따오고 싶은 글귀가 엄청나게 많았는데 너무 많아 다 따지는 못하고 조금만 이 곳에 적어두고자 한다.


"법관으로 재임 중 중립적이었다고 생각한 판결은 나중에 보니 강자에게 기울어진 판결이었고, 재임 중 약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한 것은 나중에 보니 중립적이었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 벤자민 카르도조, 퇴임하면서, 본 책 167쪽에서 재인용


그러나 역시 멘토는 구세주나 만능해결사가 아니다. 돌아보면 아무리 도와주시고 애써주시는 분들이 많았어도 결국 문제해결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었다. 유명인 '멘토'가 해주는 위로를 들으러 가는 시간에, 실패하더라도 과감히 몸으로 부딪혀보며 현실의 돌파구를 찾는 것이 실제 문제해결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P. 191


대학 때는 세상을 '혁명'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1987년, '혁명적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때는 세상이 완전히 바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세상은 급격히 바뀌지 않았다. '한 방'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세상은 전진후퇴, 좌충우돌, 우여곡절을 겪으며 천천히 달라진다. 조급하게 마음먹거나 행동하지 말고 이 과정을 다 버텨내야 한다. 세상이 지금보다 빨리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P. 230


버트런드 러셀 또한 내가 사랑하는 지식이다. 그는 '러셀 자서전'에서 자신이 이 세가지 열정에 사로잡혀 떠돈 나그네라고 말했다.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이 세가지 열정에 대해 다들 공감할 것이다.


"단순 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P.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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