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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이기도 하고(물론 한 학기 학부생 생활을 했을 뿐... 소양은 전혀 없음..) 관심분야이기도 한 정치학, 거기에서도 특히 국제정치학을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내게는 낯선 이름의 저자인 대니얼 W. 드레즈너였지만 <국제정치이론과 좀비>라는 책은 국제정치이론 관련 책을 찾아보면서 자주 보던 이름이었다. 국제정치이론을 좀비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묶어 쉽게 풀이해냈다는 이야기. 그래서 얼마전에, 정말로 뜬금없이, 덜컥, 샀다. 뭐, 애초에 내가 정치학의 ㅈ자도 잘 모르면서 정치외교학과를 지망한답시고 원서를 모조리 정외과나 사과대로 썼던, 그 때의 그런 느낌으로. 어쩌면 내게 정치학이란 항상 그렇게, 알 수 없게, 잘 알지 못하고, 뜬금없이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이 과연 국제정치이론에 초점을 맞춘 것인지, 좀비에 초점을 맞춘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저자의 처음 의도가 무엇이었든간에 이 책에 있어서 좀비는 그저 국제정치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온 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 오히려 좀비 논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좀비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그걸 국제정치이론에 끌어오는 저자의 눈매가 매섭게 느껴질 정도다. 그렇다. 이 책은 국제정치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좀비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오, 좀비 이야기를 하려고 국제정치 이야기를 끌어온 것도 아니다. 이 책은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좀비라는 초자연적 현상 앞에서 국제정치이론가들은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현재의 국제정치이론들은 과연 완벽한가?

 

사실 나는 국제정치이론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모교의 정치학개론 수업 하나만을 들어봤을 뿐이고 그 이후로 역시 모교에서 국제정치론 수업을 하고 계신 이근욱 교수님의 <왈츠 이후>를 한 번 읽어봤을 뿐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왈츠 이후>는 내게 굉장히 어려운 책이었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소양이 없는 나이지만, 현재의 국제정치이론이 굉장히 제각각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현재의 국제정치이론은 각 이론마다 말하는 바가 너무나 제각각이라, 그 이론들이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 "생물학에 찰스 다윈이 있다면 국제정치학에는 케네스 왈츠가 있다."고 언급되는 케네스 왈츠가 바로 이런 부분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그 유명한 저서 <인간, 국가, 전쟁>을 썼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부실한 국제정치이론이지만 굉장히 흥미롭고 유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 점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좀비를 다뤄왔던 많은 이야기들(영화나 소설을 포함하여)이 간과해왔던 국가의 조직적 대처, 국제 정세에 주목한다는 점이겠다. 그동안 좀비 아포칼립스물(좀비 등장 이후 난장판이 된 세상을 다루는 이야기... 정도?)에게 있어서 국가란 완벽하게 무능하고 파탄이 난 조직에 불과했다. 그러나 저자는 과연 그런 상황에서 국가는 무능하게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조직적인 대처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국제정치의 여러 사조를 통해 바라본다. 이 책은 좀비에 대해 분석하고 거기에 맞게 현실주의, 자유주의, 신보수주의, 구성주의라는 국제 정치 사조를 적용해볼 뿐만 아니라 관료주의를 비롯해 이런 국제정치이론이 실패할 수 있는 요소들까지도 살펴보고 있다.

 

실제로 내가 그간 읽어본(또는 읽지는 못했지만 읽으려고 시도해본) 책들 중 가장 잘 읽히는 국제정치론 관련 책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도 굉장히 흥미롭고. 국제정치이론에 대한 지식 이상으로 좀비 아포칼립스에 대한 지식과 시선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기회다. 대개 좀비가 등장하는 매체들에서는 주인공이 뛰어난 역량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다 망하거나... 뭐 그런 결말이 많은데, 이 책에서는 여러 이론을 끌어들임으로써 결론적으로 좀비가 창궐한 세상에서 국가란, 국제정치 체계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국제정치이론 입문서라는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들었던 정치학개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책인 만큼 확실히 깊이는 얕다. 이 책을 바탕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면 좋으리라.

 

규범은 그런 관습의 수가 훨씬 많고, 고유한 매력과 결합했을 때 일반적으로 용인된다. 살아있는 사람의 살을 먹는 행위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은 쉽게 무시해버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좀비의 생활방식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는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시체는 목욕을 하거나 수염을 깎거나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자기 종족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도 않는다. 좀비는 인종, 피부색, 종파, 민족성, 성적 지향 등을 기준으로 남을 차별하지도 않는다. 대규모로 무리지어 시간을 보내며, 극단적으로 친환경적인 생활을 한다. 좀비는 어디든 걸어만 다니고, 유기농 식품만 먹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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