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 (2013)



밀려있는 리뷰, 열심히 쓰고 있다. 이번엔 몽타주.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정말로 딱 하나였다. 김상경. 나는 사실 김상경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거의 아는게 없었다. 그러다 김상경이 나오는 작품 중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이 KBS 드라마 스페셜에서 8부작으로 제작된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거기에서 김상경이 연기한 김요한이라는 캐릭터는 새로운 느낌의 '악역'(와, 이 단어가 이렇게 안어울리는 작품이 있다니!)을 훌륭하게 연기해냈다. 악역이라고 하기엔 그 작품에 너무 착한 역할의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기도 했고, 애초에 선악을 긋는 것이 어색한 작품이긴 하지만.


그랬던 김상경 씨가 이번엔 사건에 매달리는 형사로 변신했다. 이것도 꽤 잘 어울리는구나, 싶었다. 사실 보는 내내 김요한이 떠돌긴 했는데, 김요한이랑은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작품 하나로 팬이 되버렸음.


이 영화의 아주 큰 틀을 잡으라면 역시 인과응보라는 메시지를 포기할 수 없다. 그 한철(할아버지)가 15년전의 유괴범이었다, 라는 뒷이야기는 소름끼칠 정도였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나 한철과 하경(엄마)은 쏙 빼닮았다. 하경의 아이를 유괴했던 한철은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딸이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결국 다른 사람의 딸을 납치했고, 그게 의도했던 바이든 아니든 간에 결국 죽이고 만다. 그리고 하경은, 그런 딸의 복수를 위해서(공소시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역시 전혀 무관한(아니, 하경의 입장에서 연관되어있음을 알 수 없는) 한철의 손녀를 유괴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캐릭터는 완전히 빼닮았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왜곡되서 표현될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 피해자였지만 가해자가 된 하경은 큰 문제없이 넘어가게 되지만, 가해자였고 후에 피해자가 된 한철은 결국 손녀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자신이 납치범이었음을 인정할 것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그 한철은, 자신이 딸을 살리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범죄자가 되었던 것과 같이, 이번에는 자신의 손녀를 살리기 위해서 '사실은 아니지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범죄자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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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무엇이 정의인가? 한철의 행동, 하경의 행동 각각은 정의로운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각자의 사정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하경의 행동은,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하는 걸까. 사실 공소시효나 소년법같이 범죄자에 대해 처벌을 경감하거나 처벌할 수 없게 되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예컨대 소년법같은 경우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백>(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이나 일본 드라마 <스트로베리 나이트>에서도 다뤄진 바 있는 일이다. 이 부분 역시 정의란 무엇이고 처벌이란 어떻게 가해져야하는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사실 공소시효와 소년법은 완전히 다른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공소시효는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우선은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만들어졌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수사기관의 업무 효율성, 증거의 효력 약화, 법적 안정성 등등의 이유를 위한 것이라고 나온다. 반면 소년법은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소년의 범죄에 대해 그들의 미래에 대한 안전장치로 작용하기 위함이다. 모두 옳은 취지에서 시작됐지만, 그 각자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옛날에 블로그에도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다. 과연 법이 정의의 수단이 될 수 있는가. 악법은 존재한다. 그리고 정치학에서는 법을 권력 주체의 권력 수단으로 표현한다. 옳은 말일 것이다. 법을 지켜야한다는 말은 지나치게 당위적이고, 그래서 더 현실성이 없다. 우리가 법을 지켜야한다면, 왜 지켜야하는가에 관해서는 지극히 도덕적인 이야기만 할 수 있을 뿐이고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기 어렵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법률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법과 정의가 하나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법은 그 사회에서 인정받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지고 운영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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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시 영화가 끝나고 난 뒤를 돌이켜볼 때, 한철은 결코 용서받거나 이해받을 수 없는 캐릭터이고, 그런 캐릭터여서도 안된다. 한철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거나, 자신의 딸을 위해서였다거나, 그렇다고 한다면, 적어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 속죄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한철은 그러지 않았다. 한철은 모든 것을 가지려고 했을 뿐이다. 자신의 딸의 목숨도, 자신의 '무죄로 숨어 사는 것'도 모두 버릴 수 없었다. 그런 그의 마음에는 조금의 속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15년의 공소시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왔고, 결국 15년의 공소시효가 끝난 뒤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한다. 그의 달력에 공소시효가 끝나는 날을 강조해 표현한 것, 그리고 자기 자신 나름대로 속죄랍시고 꽃을 가져다 놓은 것, 그런 것은 모두 한철의 끔찍한 인간성을 대변한다.


완전히 다른 이야긴데, 임지선 기자가 그녀의 책 <현시창>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라고. 한철도 그렇다. 한철은 그런 식으로 속죄할 자격이 없다. 아니, 애초에 그것은 속죄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한철과 하경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인간의 왜곡된 부성애/모성애와 본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조금 끼워맞추기 식으로 말해보자면, 그것이 바로 '몽타주'일 것이다. 작품 중에서 몽타주는 한철의 얼굴을 그린 몽타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영화 막바지에 하나도 안닮았다, 이러니까 못잡는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몽타주'가 지시하는 것은 한철은 물론이고 15년 뒤의 하경까지일지도 모른다. 진짜로 그렇다는게 아니라, 상징적으로. 물론 지나친 끼워맞추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뭐 어쨌든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소심한 해석.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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