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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서만 기록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털어놨는지 모른다. 그건 쓰고 있는 일기에도 마찬가지고. 사실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결국 내가 이렇게 열심히 적어놔도, 사실 별로 다시 보지는 않는다는 것. 다른 사람의 글이 한 블로그에 몇 년치가 쌓여있고, 그걸 거꾸로 거슬러올라가면서 읽는 것은 나름 좋아한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의 블로그를 그렇게 몇 번 보기도 했다. 그 때마다, 아, 이 블로그 주인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러나 굳이 말하자면 살짝 유쾌한 기분으로 그 블로그를 껐다. 


단 한번도 그렇게 본 블로그에 따로 댓글을 달거나 방명록 같은걸 남겨본 적은 없다. 몇 년이나 지난 글에 갑자기 댓글을 다는 것도 이상하고. 어쨌든 그렇게 본 몇몇 블로그는 아직도 북마크해놓고 종종 들어가보곤 한다. 아, 이 사람, 아직도 블로그를 하고 있구나. 열심히네. 옛날에 한창 일본 서브컬쳐 문화, 즉 재패니메이션으로 대표되는 일체의 문화에 흠뻑 젖어있을 때 내가 찾는 블로그들은 주로 그 쪽에 관심을 두고 있느 그런 블로그들이었다. 그땐 나도 별다른 SNS를 하지 않았었고, 2009년 중순에 트위터를 시작했었지만 사실 그닥 열심히 하지 않고 그대로 접었었다. 트위터를 본격적으로 한건 2010년. 페이스북도 계정은 훨씬 일찍 만들었지만 본격적으로 한건 재수를 시작하면서였다. 그러니까, 블로그는 내게 있어서 하나의 SNS였다. 


블로그를 마치 노트처럼, 내 글을 차곡 차곡 쌓는다는 느낌으로 쓰기 시작한건 얼마 되지 않았다. 아니, 옛날부터 블로그에 약간의 길이가 있는 글들을 쓴 적은 있지만, 그때는 그냥 쓴 거였지 그런 의식은 없었다. 딱히 쓸 곳도 없는데 블로그에 대충 끄적여놓는다? 라는 느낌의.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그래서 흥분해서 두서없는 글들을 적곤 했다. 한창 어정쩡하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때였던 것 같다. 어쨌든 아마 기록에 대한 고민은 여기쯤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블로그와 일기를 둘 다 쓴다는 것은 굉장히 소모적이고 아직도 나는 글쓰기에 그 정도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지 못하다. 글쓰기는 왠만한 사람 이상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한심하게 잘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면 최소한 평균보다는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글쓰기 밖에 없다(물론 이 블로그만 봐도 내 글쓰기 수준의 한계는 분명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의 서평에서 내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대신 다른 잡지에다 썼거나 또는 별 목적 없이 썼다가 내던져둔 에세이를 벽장에서 한 보따리 꺼내, 쓸 만한 것 여덟 편을 손질해 추가했습니다.

──작가의 말 中


이렇게, 별 목적 없이 에세이를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멋진 사람인 것 같기도 하지만. 하긴 일기도 잘 다듬으면 에세이 한 편이 될 수 있으려나.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하면, 턱도 없는 소리다. 이 때는 일기를 꽤 오랫동안 쉬고 있던 때이기도 했고, 에세이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던 때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에세이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는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다시 생각해보면 에세이와 일기는 본질적으로는 같은데 형식면에서 너무나도 큰 차이를 떠안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에세이는 굉장히 각을 잡고 쓴 글이라는 느낌이라면, 일기는 훨씬 자유롭게 쓴 글이니까. 그리고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그리고 내가 쓰는 글에 따라 분류해보면 에세이는 읽히기 위해서, 일기는 쓰기 위해서 만들어진 글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나에게 있어서는 블로그의 글이 에세이에 가까운 느낌이다. 에세이라고 부를만한 거창함은 하나도 없는 글이지만. 중요한건 그런 구분이 얼마나 소용이 있느냐하는 것. 일기 쓰기에 대한 조금의 회의감도 있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어차피 적어도 나 자신이 다시 보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물론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내게 일기는 쓰기 위한 글이지 다시 보기 위한 글은 아니지만, 내가 일기를 쓰는게 정말로 쓰고 싶어서 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일기라는 형식에 갖혀서, 일기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쓰고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옛날에는 모든 글을 블로그에 썼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많은 글을 지우게 된 거기도 하지만.. 그 때는 한창 중고등학교, 힘들더라도 그다지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힘들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대개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수능 힘들다, 공부 싫다, 고등학생에서 벗어나고 싶다, 뭐 그런 류의 흔한 고민들. 재수 때에 이르러서, 모르는 사람과의 접촉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가 많이 생겼고, 그때부터 실명을 언급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는 한심한 고민들도 많아졌고. 그 때 어정쩡하게 분리했더 일기는 지금도 방향성없이 방황하고 있다. 아직 어떻게 해야겠다고 방향은 잡지 못했다. 계속 이런 느낌으로 갈 것 같기도 하고. 일기를 계속 쓰고 싶기도 하지만, 조금은 부담이 되기도 하고.


터닝포인트가 필요해.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단순히 글쓰는 것 말고도, 통째로 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생활하는 방식을 갈아엎을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 그 터닝포인트는, 근데 주어져있지를 않다. 내가 만들어야할 터닝포인트. 글쓰기에 대한 이런 사소한 고민까지도 모조리 갈아엎버리고 싶다. 성격 자체를 바꿔버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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