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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한 번쯤 이해해보고 싶었다. 진보진영에서 보수에 대해 쓴 글은 객관성이 없을 것 같아서 최대한 미뤄놨다. 오히려 잘못된 생각만 기르기 쉬울 것 같아서.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 이 책이었다. 사실 나는 막연하게 표창원씨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지, 그가 보수니 진보니 하는 생각은 깊게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가 그의 이름으로 보수의 품격, 이라는 인터뷰집을 내고, 자신이 보수임을 당당하게 밝히는 모습은 조금 새로웠다. 한창 표창원 씨가 뜰 때 나는 재수생이었고 또한 재수를 마감한 이후 입시에 정신이 없었던 때다. 그가 썼던 글도, 사실은 책에서 처음 읽었던 것이다.

 

정치는 결국 불편함의 연속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주의자인 표창원은 역시 나에게 조금은 불편한 사람이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그런 생각도 있었다. 혹시 나도 보수주의자인 것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나 스스로는 중도 진보를 표방하고 있지만, 가끔 몇몇 측면에서 보수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걸 깨닫게 되는 시점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걸 고쳐서 진보적으로 만들기보다는 그 자체를 내 정체성이라고 이해했었다. 결국 책을 끝낸 시점에서, 나는 진보였음을 다시 확인했다. 표창원 씨가 말하는 보수는 확실히 내 이념과는 다르다. 그의 진보에 대한 지적은 아팠고, 보수에 대한 지적엔 공감했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나는 확실히 진보인 것 같다.

 

그러나 보수를 이해해보겠답시고 읽기 시작한 이 책을 끝낸 가운데, 나는 아직도 보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니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내가 생각했던 게 보수가 아니었던 면모가 있다. 표창원 씨가 말했던 부분 부분 꽤 진보적인 생각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대목이 있었는데, 표창원 씨는 그 모두를 보수라고 묶었다. 그런 중간지대에 있는 부분들을, 나는 아직도 진보라 불러야할지 보수라 불러야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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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모든 것의 중심을 사람으로 봤으면 좋겠다. 우리의 건국이념도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이지 않나. 지금 이념, 경제, 경쟁, 산업부흥 등 여러 가지 가치가 있지만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인간이 없다면 아주 삭막하고 허무할 것 같다. 특히 인간이 빠진 삭막한 발전, 삭막한 성장, 삭막한 경제, 이런 것들이 결국 불러온 비극을 우리는 이미 목격했지 않은가. 혁명이든 산업적 성장이든 부의 축적이든 또는 정치든 행정이든 치안이든 경찰이든 어떤 부분이든 간에 결국 그 중심 가치, 원천은 인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혹시 이게 잘하는 걸까?', '무슨 문제는 없을까?' 이런 의문이 드는 순간에 사람을 중심에 두고 한번 생각했다면 그런 큰 문제들을 막아낼 수 있었지 않을까? 예를 들면 용산 참사도 그런 경우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 가치들이 난무한다. 개발의 필요성도 있는가 하면 정리되지 않은 세입자의 권리가 있다. 이런 것들이 서로 혼재되어 있는데, 그런 것들의 중심에 인간이 없었다. 일단 인간의 생명이 손상될 수 있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말은 이거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뛰어넘을 여러가지 방안을 제시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말이 있지 않나 싶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뛰어넘으려면 그 둘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내야한다. 표창원 씨가 공부했다던 커뮤니케이션 이론 중 ABX 이론도 결국 자주 만나면석 공통된 의견을 찾는 것이 아닌가. 진보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결국 그들의 논리에 있어서 핵심도 허점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책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단순한 사물들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진보와 보수를 궤뚫는 말은 이거다.

 

내가 진보고 보수고 간에 용산참사, 쌍용차사태에 대해서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매우 적절하게 표현해주지 않았나 싶다. 결국 모든 중심가치는 인간이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고,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국가가, 시스템이 인간 위에 올라타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이래서는 안된다. 이상적인 사회나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결국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면 좋겠다는 이상향만큼은 진보와 보수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 아닐까. 그리고 그 가치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어야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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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장 불편하게 했던 부분 중 하나는 박정희에 관한 이야기다. 확실히 이 이야기는 진보와 보수, 둘 모두에게 배척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 박정희라는 사람은 그렇다. 전두환처럼 독재자라고 무조건 삿대질하기도, 그렇다고 좋은 대통령이라고 평가하기도, 그런 의미에서 보수와 진보의 의견이 가장 극명하게 엇갈리는 대통령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나는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그건 이후로도 계속될 것 같다. 내 생각은 이랬다. 아무리 그가 경제를 살렸다고 하더라도, 그가 독재자인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건 이렇다. 완전히 떨어트려놓고 생각해라. 그가 독재자라고 하더라도, 경제를 살렸다는 점은 변함 없는 것이 아닌가.

 

타당한 말이다. 그래서 더 뼈아프다. 반박할 여지가 별로 없다. 과연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역사에 맡기기엔 답이 안나오는 문제다. 이번 정권과 연결되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일부에서 박근혜와 박정희를 동일시하는 비판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박정희의 유전자가 독재유전자가 아니고서야 딸과 아버지를, 그것도 서로 다른 상황과 시대에 처해있는 둘을 묶어서 똑같이 평가하는 것은 그저 박근혜를 공격하기 위한 무리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그런 점에서 표창원 씨와 내 의견은 같다.

 

그러나 박정히의 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는 대목은 아직 불편하다.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 결국 이건 가치의 문제로 수렴하게 될 것이다. 그의 공이 크냐, 과가 크냐하는 문제. 표창원 씨가 말한 것처럼 "일단 과에 대해서 분명하게 정리하고 나면 진보진영에서 그걸 공격하지 못할거다. 그러면 공만 남는다."라는 식의 의견은, 일단 진보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고(진보가 박정희를 공격하는 대다수의 목적은 물론 보수 전반에 대한 공격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의 독재 자체를 가치의 문제에서 평가하고 있는 점도 크다), 둘째로 과를 정리하고 끝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 짧다. 공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가 박정희의 피해자가 아니니까, 거기까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이러한 관점이, 현재의 박정희를 찬양하는 것보다는 나은 방향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보수 전반에 퍼져나간다면 이건 이것 나름대로 문제가 넘치는 논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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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소위 '진보인사'에 대한 평가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인사로 손꼽히고 있는 조국같은 사람을 그는 분명하게 보수주의자라고 말한다. 거기에서 이념이나 생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할텐데 그 이유 중 가장 큰게 그가 법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직업인 '형법학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강남좌파 조국은 블랙코메디라고.

 

두 문제는 연결되어 있다. 강남좌파의 문제는, 결국 이런게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구나 싶다. 이건 오래전부터 그러려니 했다. 보수측에서 블랙코메디라고, 모순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나는 강남좌파가 새로운 좌파의 모습으로서 훌륭한 롤모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부유한 진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진보적인 생각은 가난한 사람이나 하는거야, 라는 그 전제 자체가 진보에게 족쇄를 묶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부는 상당히 큰 권력수단이다. 이러한 권력수단을 진보진영에게 포기하란 소리는 결국 보수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부유층이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기가 어려운 것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닐터다.

 

결국 자신이 얼마나 잘 사느냐와 자신의 생각이 어떠하냐는 완전히 별개라는 점에서 이러한 의견은 옳지 않다. 형법학자 조국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직업과 사상을 묶어서 생각한다면, 애초에 법관, 경찰, 군인 등이 진보적인 성향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뜻이 된다. 이 점은 명백한 표창원 씨의 오류라고 생각한다. 직업으로 정치성향을 결정지어서는 안된다. 그들이 하는 행위가 모순에 차있는 행동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조국, 넌 진보주의자면서 형법학자라는 모순을 범하고 있어! 라는 비판도 성립될 수 없다. 결국 사람은 100% 진보이기도, 100% 보수이기도 어렵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보수주의자는 사민주의적 요소의 필요성에 동의하기도 하고, 어떤 진보주의자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인정할 수도 있다. 보수라는 고리로 사람의 전반에 대한 평가를 내리려고 한 시점에서 이러한 발상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표창원 씨가 말했던 것처럼, 이건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라고 단순하게 정의될 수 있는 개념어가 아니라, 그 한 명 한 명은 결국 모두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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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중간지대로서의 안철수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동의할만하다. 안철수가 그걸 표방했든 안했든(그의 정치적 행보에만 국한한다면 물론 진보 쪽에 많이 쏠린 움직임을 보여줬지만) 그는 중간지대로서 많은 기대를 받았다. 대선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를 갈망했던 이유는, 反여권에 있어서는 "승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안철수표와 문재인 표가 상당히 갈렸다. 이 소린 부동층이 움직였단 소리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차선 또는 차차선으로 박근혜를 선택했을 사람들이(물론 이 이야긴 문재인 쪽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최선 또는 차차선에 대한 차선으로 안철수를 선택했다는 소리기도 하다. 물론 그래서 극좌나 극우에서는 비판도 감수할 수 밖에 없었지만.

 

안철수는 그렇게 '매력있는' 예비 후보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매력은 어디까지나 안철수라는 사람의 것이었지, 정치인 안철수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가 보여준 행동은 대선 기간 동안 꽤나 실망스러운 종류의 것이었다. 이제 그가 다시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는 어떤 정치인이 될까. 중간지대로서 안철수는 가능할까. 생각해보면 본인에게나 지지자에게나 가장 이상적인 포지션은 조국처럼 '재야인사' 수준이다. 재야인사에게는 아, 저사람이 정치인이 되으면 좋겠어, 하는 사람들의 희망이 비쳐진다. 검증 절차가 없기 때문에 본인이 보여주고자 하는 면모만이 부각된다. 그렇게 가장 좋은 모습으로 남을 수 있는 선이 재야인사다.

 

표창원 씨는 자신이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중간지대 이야기다. 안철수 씨와는 다른 포지션에서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쪽은 아예 본인이 본인 입으로 나는 보수주의자요, 하고 이야기한 사람이 아니던가. 보수주의적인 입장에서 중간지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요즘 그에 대한 진보진영의 긍정적인 평가를 반영한다면 더더욱. 그러나 이상적인 중간지대는 한 개인이 맡아서는 안된다. 제3 '세력'이 되어야한다. 표창원 씨는 그들에게 정치는 하지 말고, 진보와 보수를 감시하는 감시자 역할을 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직접 정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본인들이 직접 정치를 해야, 감시자 역할도 더 잘할 수 있다. 그들이 세력으로서 자신들의 입지를 굳건히 하려면, 현실적으로 직접 정치에 뛰어드는게 가장 빠르다.

 

그러나 그들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재야인사'의 매력은 상당히 손상된다. 그들이 진보나 보수, 한 노선으로 쏠릴 위험성도 크다. 그런 점에서 표창원 씨는 그들에게 직접 정치를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을까. 나도 그런 점에서 걱정은 된다. 재야 인사로서의 매력이야 결국은 허상인 거니까 그다지 신경쓰이진 않지만, 의사결정권자이 되는 직접정치인은 결국 한 노선으로 쏠리기가 쉽다. 어떤게 이상적인 모습인지, 점점 결정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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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곧 현실주의라는 모양이다. 나는 아직 지식이 얕아 보수주의자가 곧 현실주의자라는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점은, 보수든 진보든 이론 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이 품는 것은 이상일 수 밖에 없다는거다. 진보진영에서 내놓는 많은 정책들은 실제로 굉장히 이상적인 것이 많다. 그런 많은 정책들은 곳곳에서 썰려나가면서 결국 현실적인 틀을 갖는다.

 

그러나 표창원 씨가 생각하는 보수의 모습도 결국 이상적인 것이다. 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실무자들(책에서는 레미제라블에 비유하며 '자베르'라고 평가된다)은 법의 정당성을 평가할 필요 없고, 그들이 그럴 필요 없을 정도로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 이게 그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보수 사회의 모습이다. 사실 내가 들어본 여느 진보진영이 제시한 사회만큼이나 이상적인 발상이 아닌가. 이 발상 자체가 이상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애초에 실무자들에게 자신이 집행하는 법에 대한 판단 자체를 배제하라고 하는 것은 이상이 아니고서야 엄청난 문제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일이며, 또한 독단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물론 그들이 "이 법은 정의롭지 않다"라면서 개인적인 단위로 법 집행을 그만둬서는 안될 일이지만, 그들이 실무자이기 때문에 곧 법의 현실적인 적용에 대해서는 만든 사람 이상으로 잘 알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들의 비판, 그들의 평가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평가가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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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에게 불편했던 표창원 씨의 보수지만, 그래도 나름 긍정적인 측면은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멋진 보수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 있어 정의로운 보수, 정의로운 진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가 그런 이상적인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표창원 씨의 보수는, 그 당당함의 측면에서나 내용의 측면에서나 꽤 멋진 보수라고 생각한다. 비록 진보주의자의 눈에서 보더라도. 상대방이 저런 보수라면, 진짜로 싸워볼 맛이 날 것 같다. 그리고 함께 사회를 이끌어나가고 싶은 마음도 날 것 같고. 나도 그에 걸맞는, 그런 멋진 진보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그 문제만큼은 여기서 확답할 수 없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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