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불편해도 괜찮아> - 누구에게 '전문직'의 자리를 내줄 것인가?

생각해보면 저는 은근히 국어 선생님들과 사이가 좋습니다. 아니, 좋았네요. 이제 더 이상은 고등학생이 아니죠.. 각 선생님이 과목을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하시는건 중학교 때 부터였는데, 중1 때 부터 국어-수학-사회-국어-국어-국어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셨어요. 고등학교 3년 내내 국어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었던 셈이죠. 아마 이런 국어 선생님들과의 친분은 고3 때 피크를 찍었고 동아리 담당 선생님까지 국어과 선생님이 맡아주시면서.. 주변에 친한 선생님들이 어째 다 국어 선생님이다! 같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왜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하냐면... 이 책도 그 국어 선생님들 중 한 분께 받아서 읽은 책이거든요(...) 뭐 그냥 그렇다구요.


욕망해도 괜찮아. 김두식 선생님의 책으로는 이게 <헌법의 풍경>과 <불편해도 괜찮아>에 이은 세 번째 책인 것 같습니다. 기독교를 다룬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는 그다지 읽을 것 같지 않고, <불멸의 신성가족>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못 읽고 있는 책 중 하나가 되겠네요. 김두식 선생님의 글은 -아마 헌법의 풍경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굉장히 읽기가 쉽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가 되겠죠.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폭넓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신다고나 할까요. 제가 항상 지향하는 글이긴 한데 겉멋만 든 제 글은 아마 안될거에요... (어쩌다 글이 여기까지 왔나? -_-;;)


지금까지 숱한 '의무'나 '권리'에 관한 책들을 읽어온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안 읽었을 뿐, 욕망에 대해서 다룬 책이 전혀 없는건 아니에요. 아니, 오히려 많겠죠. 제목만 들어본 고전 중에도 욕망을 다룬 책들이 꽤 있지 않던가요(제목만 들어봤다는건 무지한 본인의 이야기일 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책이 있나요. '욕망해도 괜찮아'라니. 다소 도발적이기까지 한 책 제목이에요. 그리고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도 너무 많아요. 글 하나에 담기에는 너무 아깝다 싶을 정도로. 아마 몇 번 더 이 책에 관해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오늘은 그 중에 포인트 딱 하나만 잡아서 글을 써볼까 합니다. 바로 누구에게 '전문직'의 자리를 내어줄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법조인이나 의사를 비롯해 '고소득, 권위, 명예, 사회적 존경'을 모두 획득함과 동시에 이상적으로는 수많은 '의무'가 요구되는 직업들 말이죠. 김두식 선생님이 직접 다루신 내용은 아니고, '범죄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 하시다가 나온 부분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근본적으로 법을 만드는 사람도, 집행하는 사람도 모두 화이트칼라이기 때문입니다. 법을 만드는 데는 늘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기 마련인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의 로비력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그 친구들도 모두 화이트칼라이다보니, 일상에서 보고 듣는 게 '기업하는 어려움'입니다. 눈 씻고 찾아봐도 노조운동하다가 쫓겨난 블루칼라 친구가 주변에 없으니 그런 목소리는 입법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이트칼라 범죄는 법률에 규정되기도, 법에 정해진 형량을 높이기도 어렵습니다.

   그에 반해 전형적인 길거리 범죄인 성폭력 범죄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계속 새로운 범죄유형이 법률에 추가되고 법정형이 올라갑니다. 국회의원들이 볼 때, 자기와 별 상관없는, 도무지 동일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일으키는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특별법에 규정된 성폭력 범죄의 상당수는 이미 오래전에 살인죄의 법정형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 P.261


예컨대, 법을 집행하는 사람 중 하나인 검사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대한민국 검사는 어떤 직업인가요. 2010년 법무부가 도입한 '검사 선서'는 이상적으로 대한민국이 필요로하는 검사 상에 대해서 잘 담아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나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 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이해와 신뢰를 얻어내는 믿음직한 검사, 스스로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여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검사 선서, 대한민국 법무부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검사로서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걸림돌이 있습니다. 검사라는 직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이상을 위해 오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그리고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이후 더욱 심화된 현상이 바로 '법조인의 엘리트 출신화'입니다. 로스쿨이 도입되고 어떤 말이 쏟아져 나왔던가요? '개천에서 나던 용이 끊겼다'는 이야기였죠. 점점 법조인의 출신이 제한됩니다. 학벌로 치면 서울대(로스쿨 인원이 제한되면서 그 비중은 줄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를 중심으로 한 소수 '명문대 출신'이 중심이 되고, 로스쿨의 학비를 댈 수 있을만큼 '집 좀 사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네, 바로 거기죠. 결정적인 문제는 우리나라 법조인들이 '공부 잘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단 겁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은 아니지만 김어준 씨가 쓰셨던 <닥치고 정치>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오죠. 거기에서는 상당히 신랄하게 검사를 비판하지만, 거기에는 '항상 1등이었던 검사'라는 부분이 나오죠. 그들에게 1등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겁니다. 결국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개천에서 난 용은 용으로 완전히 편입되서 새로운 엘리트 층으로 흡수될 뿐이고, 그런 사람들마저 줄어들면서 법조인의 다양화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셈입니다. 전문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과연 엘리트 출신의, 철저하게 '화이트칼라'인 사람들이 '힘 없고 소외된 사람들', 또는 하다못해 '블루칼라'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욕망해도 괜찮아>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결국 이런 법조인 출신들이 국회로 대거 들어갑니다. 국회의원 출신 중에는 법조인이 굉장히 많죠. 그들은 입법 과정에서 위에서처럼 철저하게 '화이트칼라적 사고'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나쁜게 아니죠. 그들에게 공정하다고,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그 사고 모두가 '화이트칼라적'인 사고인 겁니다. 그들에게 경험 한 번 해보지 못한 블루칼라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런 내용들이 지금의 법조인들이 잘못되었다는건 아닙니다. 그들의 자리는 철저하게 그들의 노력으로 성취해낸 자리입니다. 그건 존중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논의는 지금의 법조인을 갈아엎자거나 하는 논의가 아니거든요. 지금 우리가 전문직 종사자를 걸러내는 방식이 타당하가? 에 관한 이야깁니다. 즉,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찾을 수 있는 거죠. 누구에게 전문직의 자리를 줄 것인가. 높은 학업성적은 그 기준으로 굉장히 타당해보이는 데다가 공정하기까지 합니다. 칼같이 숫자로 떨어지고, 줄 세우기도 가능하고. 무엇보다 누구도 불평할 수 없는 '객관적인' (하다못해 객관적으로 '보이는') 기준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우수한 전문직 종사자가 될 수 있을까요?


전대원 선생님이 쓰셨던 <나의 권리를 말한다>에서는 문과의 법조인과 쌍벽을 이루는 이과 진로의 대표적인 전문직, '의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서도 나오는 말인데, 의사로서의 직업 정신이 투철한 학생과 수능 성적이 높은 학생을 데려다 놓으면 대학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능 성적이 높은 학생을 뽑겠지만, 과연 그게 정당한가요? 우리가 훌륭한 의사를 존경하는 이유는, 우리가 좋은 의사를 대단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이 공부를 잘하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그들이 생명을 구하는 의사로서의 직업 정신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점수 몇 점 차이로 장차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을 학생을 떨어트려야하는 걸까요?


이게 실제적인 논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일겁니다. 그래서 뭘로 뽑을건데? 하는 논의 말이죠. 이걸 대체해보자고 도입된 것이 수많은 수시 전형 중 몇 년 전부터 떠오르는 신성 '입학사정관제'였죠. 그리고 대다수의 학생에게 이 입학사정관제가 겉만 번지르르한 전형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공정성은 제도 시행 초기 모 회사 대표가 자기 선배에게 '내 아내가 모 대학 입학사정관이다, 이럴 때 후배 덕 좀 봐라'는 트윗을 하면서 논란이 되었고, 그 신빙성에 대해서는 모 대학교에 성폭행 전과가 있는 학생이 합격되면서(그리고 그게 늦게 밝혀지면서) 한창 논란이 되고 있죠. 결국 대안이 되지 못한 겁니다. 결국 제일 중요한건, 역시 실제적인 대안을 찾아내는 것이겠습니다. 그렇지만, 실제적인 대안이 없다고 넋놓고 있어도 되는건 아닙니다. 한 번쯤 문제의식을 가져보아야할 때가 아닌가요? 과연 우리는 누구에게 전문직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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