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 금태섭, <확신의 함정>

금태섭 변호사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 따로 서평을 쓰지 않았다……라기 보다도 서평을 쓰지 못했던(이 역시 어떻게 보면 수능의 폐해다!) <디케의 눈>이 그 첫 번째였다. 최근에는 의뢰인K같은 데에서도 얼굴을 비추는 사람. 내가 접한 책의 또 한 명의 법조인, 김두식씨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책은, 꽤 매력있다. 김두식 씨가 인권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무비에세이였던 <불편해도 괜찮아>(창비, 김두식 저)를 썼다면, 금태섭씨는 확신에 대한 경계를 심어주기 위해 북에세이를 쓴 셈이다. 그 북에세이가 바로 이 책, <확신의 함정>이다.

책의 첫 느낌은, 기분이 좋다. 나같은 경우에는 책은 꼭 사야한다는 사람도 아니고, 책은 꼭 빌려서 본다는 사람도 아니다. 끌리는대로 사고 끌리는대로 빌린다. 어떤 책을 사고 어떤 책을 빌리는가는 딱히 없다. 이 책은 소장하고 싶으니까라는 기분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이 책은 읽어보고 싶지만 소장하고 싶지는 않으니까라는 기분에서 빌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럼에도 내가 굳이 책을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거기에는 밝히기 조금은 낯부끄러운 그런 사적인 이유도 있고, 바로 이 <확신의 함정>이나 위에서 언급한 <불편해도 괜찮아>와 같은 책에서 받는 즐거움 - 그 날선, 빳빳한, 매끄러운 표지와 종잇장의 느낌 때문이기도 하다.

책이 기분 조하고 한 것은, 그 특유의 표지 때문. 매끄럽고 빳빳한데, 굉장히 말랑말랑한 느낌이다. 물론 책이야 검은색으로 디자인 된 덕분에(거기다 제목은 확신의 함정.. 딱 봐도 예사 제목은 아니다) 결코 내용상 말랑말랑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책의 질감이라던가 그런건 왠지 말랑말랑한 기분이었다. 빳빳한데도 책이 가볍게 움직인다고나 할까. 좋은건지 나쁜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읽는 사람으로선 굉장히 기분좋은 책이다.

아쉬운 점부터 말하면 조금 그런데(결코 책의 아쉬운 점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나눠서 읽었기 때문에 머릿속에 깨끗하게 정리되지 못했다. 절반 쯤 읽다가, 수능 체제로 넘어가서, 수능을 보고, 그러고 나서도 꽤 시간을 들여 읽었던 책이었던 만큼. 어찌보면 바빴던 때 그 부담을 덜어주던 책이기도 하고. 물론 이 책이 결코 가벼운 책은 아니지만, 그 때 당시에는 독서라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는 위안이 되면서도, 또 동시에 부담이 되는, 뭐 그런 상황이었으니까.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라는 말들을 많이 하곤 한다. 우리는 우리 외에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이 (결코 내가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중2병걸린 것 같은, 소설 속에서 허세부리는 주인공이나 할 것 같은 말.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확신할 수 있을까?

사실 김두식 씨와 금태섭 씨를 비교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비교해서 평가할 수 있는 인물도 아니고. 그렇지만 두 사람의 집필 방식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사실 내 머릿속에 법에 대해 잡혀있는 개념은 금태섭 씨보다는 김두식 씨의 책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헌법의 풍경>은 그런 일종의 개념서같은 느낌이 짙었다. 그에 비해 <디케의 눈>이나 <확신의 함정>은 모두 사례 중심의 책이다. 금태섭 씨의 책은, 뭐랄까, 나만의 넘겨짚기로 보자면, '리갈 마인드'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았는지. 내가 살인자를 변호하고 있다면? 내가 풀어준 자가 범죄자였다면? 이 책을 광고하는데 쓰인, 어쩌면 이 책의 창작 동기가 되었을 수도 있는 이야기다. 머릿말에, 이 부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변호사, 검사.. 그런 법조인들은 모두 이런 부담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버드 법대 교수 앨런 더쇼비츠가 쓴 <미래의 법률가에게>는 그러한 내용에 대해서 그럴 자신이 없다면 형사 사건 변호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얼마전에 봤던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는 아예 그런 내용을 메인 테마로 삼는다.

내 인생에 꽤 강한 임팩트를 남긴 책이었던 <미래의 법률가>를 먼저 읽었기 때문에, 나는 형사 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들은 그런 부담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인줄 알았다. 그런 환상이 가볍게 박살난 것은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였다. "이것이 사법시스템이다"라고 말하는 주인공조차도, 그러한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비단 변호사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검사에게도 있는 부담이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에서 시작해, 여러가지 확신의 위험을 다룬다. 분야도 다양하다. 그리고 <디케의 눈>이나 <헌법의 풍경>에서처럼, 한가지를 확실하게 느끼게 한다. 아, 우리 생활에 법이 깊숙이 들어와있구나,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물론 모두 공감한 것은 아니다. 나는 역시 사상이 불순한 사람이니까. 아니아니, 불순(不順)이 아니라 불순(不純)인데. 어쨌든, 내 머릿속의 사상이란게 여기선 보수적이고 저기선 진보적이고 막 그런게 딱 위선자! 라고 욕먹기 좋은 형태로 뒤엉켜있는데, 그런 가치관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도 몇 개 있다. 막 비판하고 싶은건 아닌데 아 그래 그래, 그렇지 하고 싶은 것도 아닌, 그런 느낌. 특히 체벌같은 문제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다른 사람에게 일독을 권할만한 책이다. 여러군데 인용할만한 부분이 많았는데, 따로 적어두질 않았더니 도대체 다들 어디에 퍼져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 한 대목만 인용하면서, 이 글을 끝내고자 한다.

 대숙청 시기에 처형된 한 혁명가의 최후를 묘사한 이 소설은 단순히 사회주의 체제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있지만은 않다. 이 책이 나오자마자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알베르 카뮈, 딜런 토머스, 장 폴 사르트르, 조지 오웰 등 당대의 지성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것은 그런 단순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오히려 '옳은 길은 단 한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외의 선택은 모두 틀리고, 잘못된 생각을 하면 제거되어야 한다'는 편협한 논리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바쇼프는 자신의 편견을 지키기 위해서 죽어간 것이다.
 천안함 사건, 교원노조 명단 공개 등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자신이 어느 편인지 밝혀야 하고 조금이라도 틀린 주장을 하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스탈린 시대의 대숙청과 비교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자신과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역시 비판의 대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르트르는 이 책을 읽고 "나의 관점이 당신의 관점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당신의 주장이 절대로 옳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그것이 좌우 어떤 형태를 취하는지에 관계없이 전제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루바쇼프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당을 위한 마지막 봉사'를 했음에도 스탈린 체제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해야한다고 강요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261~262쪽

2011. 11. 28 수첩으로부터 인용구 추가
만일 어떤 목적을 위해서 객관적인 자료를 특정 방향으로 읽어내려 하거나 실제로 발생하는 현상과 일치하지 않는 이론을 밀어붙이려는 시도가 있다면 단호히 배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행동은 옳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애초에 순수한 의도로 시작된 일, 예를 들면 환경 보호 운동에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187쪽
결국 당명을 바꾸기는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따서 그 사람과 친한 사람이 연대한 모임이라는 뜻의 당명을 공식 명칭으로 하는 정당이 존재했던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을 무조건 추앙하는 것이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절에 존재하는 법조문과 그 때의 '사법절차'를 보면 과연 그 시기를 그리워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확신의 함정 - 10점
금태섭 지음/한겨레출판


인용, 참고, 관련
 -(책) 앨런 더쇼비츠, <미래의 법률가에게>, 미래인, 2008
 -(책) 김두식, <헌법의 풍경>, 2004
 -(책) 금태섭, <디케의 눈>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2011, 미국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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