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2010) - 그 무엇보다 잔인한 복수, 아십니까

그 무엇보다 잔인한 복수, 아십니까
고백, 2010년(한국 개봉 2011년 2월 예정)
Confessions, 2010


고백, 이라는 제목. 나는 잘 모르겠지만 감독도 주연 배우도 다들 네임밸류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이름에 끌려서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후회하지 않았으리라. 고백, 다른 수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왠지 너무나도 서정적이고, 사랑이 연상되는, 왠지모를 따뜻한 단어. 그것도 일본영화라면, 더더욱이. 내 머릿속의 고백은 그런 이미지였으리라. 물론 이 영화를 그래서 고른 것은 아니다. 우연히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한 영화 리뷰 블로거가 쓴 후기를 보고, 이건 꼭 봐야하는 영화다- 싶어서 보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2월 개봉 예정이라는데, 부끄럽게도 나는 극장에서 본 것은 아니다. 난 한국에 사니까,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여유만 있다면, 이런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봐야한다. 절대 영화표가 아깝지 않은 영화이기에. 개봉은 2월 17일 예정이라고 한다.

영화의 특성상 내용을 말하지 않으면 글의 전개가 어려울 것 같다. 스포일러를 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스크롤을 내리거나, 페이지를 이동하도록 하자.


여러분들은 사람을 죽여도 죗값을 치루지 않습니다

그녀는 고백한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이 반에 있습니다, 라고.

그녀의 고백이 교실을 채운다. 다음달로 교사직을 그만둔다는 그녀의 고백에 환호하는 교실은, 무너져가는 일본 교육의 현실을 대변한다. 사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무너져가는 일본 사회를 그려내고 있다. 그것은 루나시 사건을 비롯해 곳곳에서 그려진다. 무너진 교실의 모습과 없어진 교권. 학생을 순진할 것이라고 믿는 교사를 "어리석었다"고 평가하는 그녀, 모리구치의 한마디에 이 모든게 함축되어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어느새 불신 이상의 것으로 진행되어있는 것이다. 그것은 청소년기를 보내는 치기와 그것을 바로잡아주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파괴되어간 교사상(모리구치)을 함께 제시한다. 모두가 몰락해야만 하는 교육이라면 그 의미는 어디있는걸까. 아니, 그 의미 자체는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사건 전개 역시 거기에 뿌리를 둔다. 학생의 비행과 치기가 모리구치의 딸을 죽였다. 학생 A와 B로 거론되는 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일본의 무너진 교육 시스템이 일으킨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 영화가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요소는, 소년법이다. 그것은 청소년을 명확한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고 전제, 청소년이 일으킨 범죄를 '비행'이라는 이름으로 평가하여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
여러분들의 목숨을 지켜주는건 부모입니까? 무기입니까? 여러분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믿음직스러운 아군, 그것은 소년법입니다. 14세미만은 형법 41조에 의해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 체포되지 않는다. 좋지요. 여러분들과 같은 13살 소녀가 신성한 의식이라 칭하며 가족들의 저녁밥에 여러가지 약물을 넣어 그 증상을 블로그에 자세하게 올린, 그래요, 루나시 사건. 소녀가 블로그에서 그 닉네임을 써서 언론은 그 사건을 그렇게 이름붙이고 실컷 떠들어댔습니다. 최종적으로 청산가리로 가족모두를 살해안 소녀의 범행 이유는...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그게 도리어 어리석은 망상을 낳아 같은 세대의 어린이중엔 그녀를 숭배하는자도 생겼어요. 소녀에게 약품에 대해 자세하게 가르쳤다는 이유로 담임인 이과교사만이 강한 처벌을 받고 당사자인 그녀는 아동지원시설에서 글쓰기나 하고 있으면 탈없이 사회로 복귀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사람을 죽여도 죗값을 치루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살인을 멈출 방법은 없습니다. 맘만 먹으면 야구부의 금속배트로도 조리실의 식칼로도 체육창고의 밧줄로도, 이 맨손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까.
──유코 모리구치, 교직을 떠나며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왔던 소년법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 실제로 이러한 의견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고, 그것의 제한 연령을 어디까지 해야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많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의 범죄가 치기에서 비롯되는, 명확한 가치판단 능력을 가지지 못하여 발생하고 있음은 여전하다는 것. 그렇지만 점점 범죄의 질이 나빠지고 있고, 비행이라는 이름으로 덮을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음 역시 확실하다.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하는 것일까.

모리구치는 그에 대해, 자신은 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사실도, 경찰이 사고사라고 내린 판단도 뒤집을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의아해하는 학생들에게 그가 말한 복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지금 경찰에게 사실을 밝혀도 소년법에 의해 보호받는 둘은 보호관찰처분. 사실상 무죄입니다. 전 그걸론 불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교사에게는 잘못을 저지른 학생을 바른길로 이끌 책임이 있습니다. 둘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실감했으면 합니다. 자기가 저지른 죄의 무게를 알고 그걸 등에 지고 살았으면 합니다. 방금 여러분들이 마신 우유. 저는 둘이 마신 우유에 어떤걸 섞어 놨어요. HIV에 감염된 사쿠라미야 선생님의 혈액이에요.
HIV.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로 번역되는 이 바이러스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 즉 에이즈(AIDS)를 유발시키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다. 그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을 사쿠마리야 선생의 혈액을 섞었다는 모리구치. 학생들은 경악하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슬슬 의구심이 생길 법 하다. 말이 되는 소리야? 저게? 그렇다, 말이 안된다. 후반부에 가면, 결국 밝혀진다. 피는 섞지 않았을 뿐더러 얻지도 못했다고. 실제로 섞을 생각이었지만 사쿠라미야 선생에게 제지당했음을. 그럼에도 그녀가 말한 그 한마디는 그 학생들을 옥죄어온다.

보복의 당사자도 보복의 행위자도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비극적인 이야기

자신들의 붕괴를 막는 방법은 기쁜 "척" 하는 것이었다

소년 A로 지목된 슈야와 B로 지목된 나오키. 그들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슈야는 학교에 등교한다. 그리고 싸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모이면서 내면에서는 그 모든 상황을 즐기고 있다. 모든 이야기의 전개는 슈야에 의해서 진행된다. 반면 나오키는 AIDS에 대한 공포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잠궈버린다. 자신을 폐쇄한다. 그 결과는 자신의 어머니를 찔러 죽이는 것으로 끝맺는다. 반면 슈야는 그 상황을 즐기면서도 결국 자신이 원했던 바를 이뤄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더욱 더 철저하게 모리구치에게 보복당한다. 그 과정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진심을 지켜봐줬던 미츠키마저 죽이면서.

사랑으로 발전했던 미츠키, 킬링타임에 불과했던 슈야.

사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외쳤던 것은, 저 둘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다. 붕괴되어가고 있는 미츠키와 붕괴되어버린 슈야는, 상상 이상으로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그는 살인자야, 용서받을 수 없어, 라는 생각이 자꾸 머리에 스쳤다. 그렇지만 어째서였을까. 잔혹한 살인자와 또다른 살인자를 동경하는 한 소녀의 사랑을 응원했던 이유는. 결국 슈야의 손에 의해 미츠키는 죽지만. 애초에, 슈야에게 미츠키는 킬링타임용이었다고 묘사된다. 그것은 슈야의 싸이코패스적인 면모의 하나였다. 미츠키는 모리구치에게 슈야를 용서해달라면서 찾아가기까지 했는데도, 결국 거기까지가 한계.

루나시를 동경하고, 자신과 겹쳐봤던 한 소녀의 일탈은 그걸로 끝이었다. 잔혹한 죽음. 그 소녀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루나시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그녀가 보았던 것은 무엇이었고, 슈야를 동정하면서 보았던 것은 무엇이었으며, 슈야를 사랑하는 동안은, 모리구치를 찾아갔을 때는, 슈야에게 머리를 둔기로 얻어 맞았을 때는, 다시 그에게 손을 뻗었을 때는, 그 손을 잡아주는 슈야를 보았을 때는, 나머지 손으로 다시 둔기를 휘두른 슈야를 보았을 때는, 그리고 그렇게 의식이 끊어질때는. 또다른 주인공, 미츠키는 그렇게 죽는다.

두 사람은 그렇게나 잘 어울렸는데도, 결국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고 만다. 양방향의 사랑이었지만 단방향이었던,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


결국 슈야를 싸이코패스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 이혼을 통해 파괴된 가정, 잘못된 교육. 그 모든게 슈야를 뒤흔들었고 결과적으로 모든 사건을 전개시켰다. 그리고 슈야를 정상인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어머니와의 만남을, 모리구치는 복수로서 완전히 짓밟아버린다. 서로에게 소중한 것을 빼앗는다. 그 방법은 또 얼마나 잔인하던가.

이 영화에서 결국 행복한 사람은 누구도 없다. 보복의 당사자도 보복의 행위자도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비극적인 이야기.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네 명의 죽음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아무 죄도 없었던 모리구치의 딸 마나미,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가장 아껴지는 대상이라는 이유로 죽게 되는 슈야와 나오키의 어머니, 그리고 그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그 사건을 정상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려고 했던, 그러나 자기 본인부터 붕괴되고 있었던 미츠키.

이 영화가 필름에 담아내는 요소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붕괴된 학교의 모습은 앞서서 말했다. 왕따라는 요소는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분명히 담겨있다. 조기 교육의 폐해? 그것도 맞는 소리겠지만 좀 더 정제해서 표현하자면 인간성 교육의 부재와 가족해체다. 무엇이 중심일까. 나는 그 무엇도 알 수가 없다. 주인공은 모리구치이고 주된 사건은 마나미의 죽음이지만, 그보다도 그 주변적인 이야기를 핵심적으로 끌어온다. 그리고 철저하게 파괴당하는, 철저하게 붕괴되는 슈야의 모습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앞서 스포일러 경고라고 말했고 이미 스포일러를 잔뜩 흘려버렸지만, 그 복수과정만큼은 스크린에서 직접 만나보는게 좋겠다.

참 소름끼치는 영화다. 차라리 칼을 들고 난도질을 하는 영화라면, 섬뜩하기는 했을지언정, 구역질이 나기는 했을지언정, 이렇게 가슴속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으리라. 감독의 연출 실력도 대단했다. 나오키 파트에서 그 연출은 극한에 달한다! 다들 나오키 파트를 눈여겨 보시길. 그 역설적인 연출 덕분에 이 영화는 더욱 섬뜩해지니까.

다만 한가지 우려되는 바는,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인만큼 잔혹하다. 유혈낭자는 기본이라는 이야기다. 나처럼 내성이 약한 사람이라면 버티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나야 최근에는 어느정도 내성이 생긴 것 같지만.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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