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정재승 - 크로스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러나 가장 잘 어울리는
크로스
정재승, 진중권 공저

조금은, 아니 상당히 많이,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정재승과 진중권이라는, KAIST의 복잡계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과, 날카롭기 그지없는 논조를 가진 미학자의 만남은, 상극의 만남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 크로스다.

크로스. 뭐 만화같은 데서 자주 나온다. 두 사람이 합체한다거나(!) 하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던가. 영단어 cross의 교차하다는 곳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이종 교배하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일까.적어도 이 책에 대해서는 이종 교배라는, 적절하지 못할 거 같은 단어가 그지없이 잘 어울린다. 그만큼 이 둘의 만남은, 묘했다.

나는 이 책을 접하면서 조금은 껄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정재승이라는, 상당히 유명한 과학자를 알지 못했고, 미학자가 아닌 평론가로서의 진중권을 상당히 싫어했다. 그의 날카로운 어조는 사람들의 답답함을 풀어줄 수 있을 지언정 내 머리속에 들어있던 교수의 이미지를 뒤흔들어버렸다거나, 내가 생각하던 평론가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흔들어버렸다. 그의 주장엔 상당수 동의했으나 반대로 절대 동의할 수 없는 내용도 섞여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조금 부끄럽게 고백하자면, 진중권이라는 사람을 책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람은 그 때 그 때 다르게 보인다. 내가 정치인 유시민을 좋아하지 않지만 학자 유시민을 좋아하듯이, 진중권도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중권은 내 생각 이상으로 진솔했던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문장 하나 하나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칼날을 잘 갈아 품고 있는 문장들이 여럿 보였다. 동시에 그의 글에는 위트가 넘쳤다. 그는 진지한 글에서 사람들의 웃음을 뽑아낼 줄 알았다.

반면 정재승은 어떤가. 글쓰기의 천재, 라는 저자 소개처럼, 과연 과학자가 맞는가 싶을 정도의 필력을 지녔다.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놓는다. 그의 이야기는 하나 같이 복잡한 것이지만, 그는 책에 맞게 깊이와 완급조절을 해가면서 과학에 전혀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는 글을 써냈다. 사실 나는 날카로운 글보다는 부드러운 글을 사랑하고, 그런 의미에서 진중권 씨의 글보다는 정재승 씨의 글을 더 좋아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굉장히 새로웠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공부해온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른지를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말한 주장이 다른 사람에 의해 부정되는가 하면, 같은 주장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근거를 내놓는다. 심지어는 진중권씨는 자연과학적으로, 정재승씨는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서로의 생각을 수용한다기 보다는, 그만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Sub-note
커피 한 잔에 300원 하는 사회에서 스타벅스는 가끔 문제로 여겨진다. 자판기 남성 중 몰지각한 일부는 700원짜리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한 잔에 5000원짜리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된장녀'를 비난한다. 하지만 5000원짜리 밥 사먹는 주제에 술집 가서는 수십만 원을 쓰는 '된장남'의 행태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진중권, 스타벅스, 『스타벅스 - 취향 공동체의 탄생』
이건 나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런가, 아직도 사회를 보는 관점에는 성대결 적인 측면이 짙게 남아있었던 것일까. 풀이하기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릴 수 있는 의견이긴 하지만, 흥미로운 의견이었다.

대중은 상품과 상품 사이의 ‘차이’를 소비한다. 중요한 것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기호가치다. 생산과 소비의 물질적 모델은 산업사회에 속하는 것. 그것에 대한 정보사회의 모델은 비(非)물질화 혹은 재(再)물질화, 다시 말해 물질이 아닌 브랜드 그 자체, 혹은 물질의 디자인과 결합된 브랜드일 것이다. 스타벅스는 취미를 선사하고 전달하고 창조하는 문화적 매체다. 오늘날 기업은 취미로 묶인 상상의 공동체를 수신자로 갖는 미디어가 됐다.
───진중권, 스타벅스, 『스타벅스 - 취향 공동체의 탄생』
중요한 것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기호가치다, 라는 말 한마디에 21세기에 어떤 산업이 뜰 것인가, 어떤 회사가 성공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그렇지 않던가,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게 아니라, 문화와 취향과... 동경을 판다.

물론 키티와 바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 세계 어린이에게 미국 백인 중산층 여성의 욕망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바비는 매우 이데올로기적이다. 이 한계를 넘고자 마텔(Martel) 사는 동양인 바비, 흑인 바비, 히스패닉 바비를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다른 인종 바비에게서 우리는 매우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바비가 철저하게 백인 여성의 미를 절대화했다는 고백을 읽는다.
───진중권, 헬로 키티, 『소녀의 '분홍빛' 꿈』
키티 이야기를 하면서 비슷한 성공 사례로 바비를 뽑아들었다. 물론 키티와 바비에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부여하고 부여하지 않고를 그것을 만든 사람이 결정했을 리는 없다.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성향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우연히 붙게 된 것이고, 그것을 다시 사회에서 인식하게 되면서 발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연 마텔 사가 백인 여성의 미를 절대화한 죄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망설여야할터다. 물론, 그들이 그것을 절대화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저 고의가 아니지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설마하니 키티를 만들면서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붙으면 안되니까 고양이로 만들어야겠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인터넷 서핑과 컴퓨터 게임, 웹툰과 더불어, 아인슈타인의 '일상적 상대성이론'을 체험할 수 있는 대표적 '시간 죽이기' 문화다.
───정재승, 셀카, 『셀카에는 배경이 없다』
내가 찍는데도(혹은 내 가장 가까이에서 찍는데도),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가장 왜곡된 모습'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셀카는 '삶의 기록'이 아니라 '욕망의 기록'이다.
───정재승, 셀카, 『셀카에는 배경이 없다』
아날로그 시대에 카메라의 기능이 다분히 '집단적'이었다면,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가는 폰카나 디카의 기능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진중권, 셀카, 『얼짱을 진짜 찾아가 봤더니』
나는 셀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 한 장 가득 내 얼굴을 찍어넣는 것도 왠지 창피하고, 내가 사진을 찍으면 다른 사람이 찍어주는 것보다 더 못나오기에 그렇다. 저자는 처음, 셀카와 함께 라이프로그(Life log)를 제시한다. 셀카는 라이프로그의 초기 형태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다시, 그 의견을 저자 본인이 부정한다. 그렇다, 셀카는 기록에 의미를 두기보다 얼마나 예쁘게 나오느냐에 의미를 둔다. 그런 의미에서 셀카는 가장 왜곡된 모습을 기록하는 욕망의 기록이라는 정재승의 한 마디는 어떠한 말보다도 셀카의 본질을 궤뚫고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의견을 공유하며, 각자 자신이 가진 것을 기여하며 참여하고, 서로 보완하는 정신. 이것이 바로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핵심이다.
───정재승, 위키피디아, 『과학자들, '집단지성' 광장에 내몰리다』
그러나 위키피디아가 소중한 이유는 다음 세대에게 "공유할수록 서로 부유해진다"라는 인생의 놀라운 진실을 가르쳐주었다는 데 있다.
───정재승, 위키피디아, 『과학자들, '집단지성' 광장에 내몰리다』
정재승씨는 위키피디아를 다루면서, 누구나 그렇듯 위키위키 엔진이 가진 협업 시스템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그는 그것을 집단지성으로 풀이해내면서, 공동으로 만들어지는 위키피디아의 가장 큰 의미를 공유할수록 서로 부유해진다라는 점에 두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아마 Copyleft와 그 본질을 함께하리라.

고백건대, 내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이었던 시절은 박사 과정 때였다. 박사 과정이 행복했던 이유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세상 물정 모르고 수많은 책과 논문과 자료를 미친 듯이 읽을 수 있는 시간과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것, 그리고 실험실에서 밤을 새우며 데이터와 씨름하고, 논문의 문장 하나를 수정하는 데 며칠 밤을 새울 수 있는 열정의 추억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정재승, 박사, 『'박사'를 향한 청춘들의 고군분투』
내게 꿈이 있다면, 내 사회적 나이가 끝나고 생물학적 나이가 허용하는 날까지, 새로운 학문에 도전해 대학원생의 마음으로 '박사' 공부를 해보는 거다. 인류학이나 경제학, 건축학 같은 근사한 학문에서 인간이 쌓아 올린 지식을 모르고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니까.
──정재승, 박사, 『'박사'를 향한 청춘들의 고군분투』
박사학위에 대한 논란. 나는 박사학위에 이런 논란이 따라다니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만 막연하게, 나도 나중에 가능하면 박사 학위 정도는 따놓고 싶다는 생각과, 그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고는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아직 법학이라는 학문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몰랐고(지금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렇기에 연구도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정재승씨는 그러한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대한민국에서 무너져가는 박사 학위의 가치에 대해 안타까운 시선을 던진다. 어느새 직장의 가치가 학문의 가치를 넘어서고, 물질적 가치가 학문 연구의 가치를 넘어서버린 현실은, 소위 '돈이 안되는' 공부인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따고, 지금도 황무지나 마찬가지인 복잡계 과학을 연구하는 저자에게 상당히 이질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10점
정재승, 진중권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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